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소극(笑劇).

- P5

사실 그 일이 그저 부정적 사건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을 통해 조영남은 (본의 아니게) 우리 미술계에 한 가지 중요한 의제를 던져주었다.
바로 미술의 ‘현대성‘이라는 의제다. 대중은 이 사건에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남에게 대신 그리게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나는 외려 이미 수십 년 전에 창작의 정상적인 방법으로 확립된 그 관행을 여전히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를 절망시킨 것은 현업에 종사하는 화가, 비평가, 이론가마자 현대비술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대중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들어가는 말 中)

- P5

뒤샹에 이르러 미술은 "망막적" 현상에서 "개념적" 작업으로 바뀐다. 바로 이것이 뒤샹이 20세기 미술에 일으킨 ‘개념적 혁명‘의 시작이었다. 변기를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해석적 관념이다. 이 ‘개념적 진회‘를 통해 미술은 비로소 현대성을 획득한다. 뒤샹 이후 미술은 그 어떤 흐름에 속하는 것이든 -심지어 가장 회화적인 작품마저도- 모두 개념적 성격을 띠게 된다.


(7장 아우라의 파괴-20세기 미술사에 일어난 일 中)


- P173

작품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 에드워드 킨홀즈는 <개념 타블로>를 만들었다. 그의 작후믈 구입하려는 고객은 그로부터 1.개념을 적은 종이를 사거나 2.구상을 그린 그림을 사거나 3.더 많은 돈을 내고 물리적으로 실현된 작품을 살 수도 있다. 킨홀즈가 ‘편의상‘의 이유에서 제작을 포기했다면, 멜 보크너는 물리적 실행을 아예 ‘개념적으로‘ 포기한다. 보크너의 작품은 구상을 적은 서류철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미술은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변한다. 미술을 ‘망막적‘인 것에서 ‘개념적‘인 것으로 바꾸어놓겠다는 뒤샹의 구상이 완전한 실현에 도달한 것이다.

(7장 아우라의 파괴-20세기 미술사에 일어난 일 中)

- P182

모더니즘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터부를 깨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한 가지 터부가 있었다. 바로 ‘절대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조건‘ 아래에서 모던의 해방서사는 이미 구속력을 잃었다. 모던을 지배했던 선형적 시간의 고나념이 무너지면서 작가들은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제가 원하는 시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7장 아우라의 파괴-20세기 미술사에 일어난 일 中)

- P194

앞의 글(<조영남 사건에 관하여>)이 나간 후 대중들 사이에 서서히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아가는 것을 본다. 그나마 이 사건 속에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그 덕에 우리 사회에서 현대미술의 본성, 특히 현대미술의 ‘개념적 전회‘에 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그게 다 조영남 덕이다. 그는 그저 남들이 이미 1970년 이전에 관철해낸 어떤 관행에 슬쩍 편승했을 뿐이나, 미술계 일각의 수준이 워낙 형편없다 보니 그가 졸지에 상대적 전위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다만 그가 이 일을 남에게 ‘들키는‘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아가 당당히 주장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훨씬 더 좋을 뻔했다.

(10장 조영남 작가에게 권고함-내가 이 사안에 끼어든 세 가지 이유 中)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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