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벗! 불행이란 전염성이 강한 병인가봅니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의 불행과 가난이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서로서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께 어마어마한 불행을 가져왔군요. 당신께서 지금 겪고 계시는 불행들은, 당신꼐서 혼자 조용하게 사시던 시절에는 전혀 경험하시지 못하던 것들이지요.

- P138

바렌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게 화를 내지는 말아 주십시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가아 견딜 길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원래가 변덕스런 법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그렇게 정해 놓은 것입니다. 가난뱅이란 뒤틀린 성미를 갖고 있습니다. 가난뱅이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곁눈질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주위를 겁먹은 눈으로 둘러보면서 남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나치게 신경을 씁니다. 말하자면 혹시 저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다니는 형색이 너무 형편없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느끼는지 살피는게 아닐까? (...)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시시콜콜 신경을 쓰게 됩니다. 바렌카, 가난뱅이는 넝마 조각보다 못한 존재고, 어느 누구하네서도 존경을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 P145

그렇습니다. 나는 오늘 털이 숭숭 빠진 참새 새끼나 곰 새끼 같은 몰골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려니 너무 창피해서 온몸이 확확 달아올랐습니다. 바렌타, 나는 정말 창피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옷이 하도 낡아서 팔꿈치가 훤히 드러나 보이고 실오라기 씉에 단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겁을 잔뜩 집어먹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제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은,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 없는 꼴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기가 죽을 것입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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