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에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자신이 취해야 할 다음 단계들이 각각 어떠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그녀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가슴 아파하지 않았고, 부당한 비난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페르미나 다사의 성격과 동기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하면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대목은 편지 그 자체가 그에게 답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럴 권리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실제로 답장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의 인생은 그가 도달하고자 한 경계 안에 들어온 셈이었다. 나머지 모든 것은 그에게 달려 있었다. 그는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자신의 지옥이 아직도 많은 치명적인 시련을 요구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보다 더 뜨겁고 더 아프게, 그리고 더 사랑스럽게 그런 시련과 맞설 각오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 기회가 마지막일 것이기 때문이다.

- P230

(...) 결국 그녀는 매달 한 번씩 일요일에 가족 묘지를 찾아가던 습관도 버리고 말았다. 그가 관 안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소리치며 내뱉고 싶은 욕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 그러니까 그녀는 죽은 사람과 싸운 것이었다. (...) 로렌소 다사에 관한 기사에 대해서는, 그 기사가 실린 것과 자기 아버지의 진정한 정체를 뒤늦게 발견한 것 중에서 어느 쪽에 더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둘 중의 하나, 아니면 둘 다가 그녀를 완전히 절망의 상태로 몰고 간 것은 틀림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그토록 고상하게 보이게 만들었던 깨끗한 강철색의 머리카락은 누런 옥수수수염처럼 보였고, 암표범처럼 아름답던 눈은 과거의 광채를 회복하지 못했으며, 분노의 불꽃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행동에서는 더이상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눈에 띄었다.

- P283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아닌 다른 남자였다면, 다리를 절고 당나귀처럼 가죽이 벗겨져 따끔거리는 등을 가진 노인네와 죽음 이외에는 그 어떤 행복도 갈구하지 않는 여자에게 무슨 미래가 기다릴 수 있겠느냐고 마음속으로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재앙의 잿더미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냈다. 왜냐하면 페르미나 다사의 불행은 그녀를 더욱 멋지게 만들었고, 분노는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으며, 세상에 대한 원한은 스무 살 때의 망나니 같은 그녀의 성격을 외돌려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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