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아버지의 손을밀쳐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떨쳐낼 수 없었다. (...)
하지만 나는 이 작은 사건의 진상을 고민하는 일에서 마침내 해방될 수 있었다. 이 해방은 예고도 없이 문득 나에게 찾아왔다. 아버지도 무덤 안에서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미묘한 접촉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을 때 나는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듯했다. 아버지도 저세상에서 작은 물고기가 꿈틀하던 느낌을 두고 생각에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 생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식으로서의 자의식을 느꼈다. 새삼스레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며 아버지는 내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꽃나무 아래서 中)
- P17

나는 그것을 들고 맨 나중에 영구차에 올랐다. 맨 뒤쪽 내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어머니의 뼈가 들어 있는 항아리를 무릎 위에 놓고 두 손으로 좌우에서 눌렀다. 그때 나는, 어머니는 길고 격렬한 전투를 혼자서 치르고 싸움이 다 끝난 뒤 몇 개의 뼛조각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설면(雪面) 中)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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