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따. 동생에게 엄마 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날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어느 것이나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라도 나는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느끼는 그 절망감을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나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내 속에서 울고 있었다.

(죽음과의 경주 中)
- P54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서, 그날 아침에 보았던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읽을 수 있었떤 것들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다. 거절당한 탐욕, 비굴할 정도의 겸손, 희망, 참담함, 결코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던 고독을. 그 고독은 죽음 앞에 혼자서야 하는 고독이자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고독이었다.
사르트르는 내 입 모양 또한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죽음과의 경주 中)
- P55

죽음과 고통 사이에 일종의 경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처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을 때에도 어떻게 모른 체하고 그의 고통을 더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죽음이 승리를 거두는 때에도 왜 그리 가증스럽게 천국을 들먹이며 신비화시키는지!

(죽음을 응시하며 中)
- P112

엄마는 우리가 자신의 곁에 있다고 믿고 있었따.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엄마가 서 있는 세계와는 다른 쪽에 서 있었다. (...) 엄마는 저 멀리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회복되고 싶은 집념과 인내와 용기 그 모든 것이 속임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엄마의 그 어떤 고통도 전혀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죽음을 응시하며 中)
- P113

무엇보다도 우리가 고통스러워한 것은 엄마가 겪는 임종의 고통을 보다가 다시 또 의식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느꼈던 모순된 감정이었다. 고통과 죽음이 경주를 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차라리 죽음이 먼저 와 닿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었다.

(촛불이 꺼지듯 中)
- P150

친구인 보테에 아주머니가 그 날 심할 정도로 흥분하여 가정부 이야기를 했다. (...) 내가 돌아왔을 때 엄마가 말했다.
"환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아픈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는 아무런 관심이 없거든."

(촛불이 꺼지듯 中)
- P160

굼요일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토요일에는 내낸 잠을 잤다.
:그게 좋은 거예요. 푹 쉴 수 있으니까요."
푸페트의 말에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잠만 자느라고 오늘은 살아가지 못한 셈이야."
삶을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촛불이 꺼지듯 中)
- P160

엄마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숨결이 얼마나 가늘었던지 나는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숨이 멈출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검정 색깔 끈은 여전히 조금씩 오르내리고 있었다.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는 문턱을 넘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촛불이 꺼지듯 中)
- P174

우리는 엄마의 유물들을 엄마와 가까웠던 분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었다. 털실 뭉치와 짜다가 그만둔 뜨개질 조각들이 든 반짇고리, 압지, 가위, 골무 등을 앞에 놓은 채 우리는 북받치는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사물이 지닌 힘인가 보다. 엄마의 삶이 그 물건들 속에 응축되어 있다. 그 어떤 순간에서보다도 더 분명히 현존하여 있는 모습으로.

(산 자와 죽은 자 中)
- P200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족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실존, 혹은 공허 中)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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