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어제의 팬티를 뒤집어 입었지 성큼
냄새가 앞서나갔지
어제가 듬뿍 묻어 있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새벽에게 주어진 옷가지가 단 한 벌뿐이었다는 것을 이해한담녀 나는 더이상 나를 낭비하지 않을텐데

내일은 오늘을 뒤집어 입은 채 앞장선다
당당하다, 그러나 조금 쑥스러운 기색

(더 지퍼 이즈 브로큰 中) - P14

취한 차라투스트라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전신주에 기댔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는 반듯하고 단단한 사람이니까 세상의 모든 전신주만큼 믿음직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차라투스트라에게 내가 무수한 전신주 중 하나의 전신주에 불과하더라도 모욕일 리 없다 차라투스트라의 토사물을 손으로 받았을 때 반듯하고 단단한 사람의 어쩔 수 없음에 감격하여 조금 울뻔 했지만 나는 차라투스트라의 구토를 손바닥에 올려보기 위해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차라투스트라의 과거가 마침내 나의 손바닥 위로 폭발한 것
그렇다 차라투스트라의 미래를 제외한 차라투스트라의 모든 것, 그의 위장에서 식도를 타고 구강을 열고 나에게로 쏟아진 것 차라투스트라는 눈이 멀어버렸다 그의 모든 빛이 내 손아귀에 있기 때문이다

(신은 웃었다 中) - P48

그때 아침 태양은
당신의 얼굴을 얼마나 자세하게 깨무는지
오줌싸개 천사의 발밑에 고인 동전처럼
얼마나 자세하게 외로운지

양을 대신해 깨어나는지

꿈을 질겅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 자들
크고 작은 전쟁의 병사들
가장 먼저 죽는 행운을 빌었지만

잠을 뛰쳐나온 한 마리 양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아 매매 우는지

(잠을 뛰쳐나온 한 마리 양을 대신해 中) - P64

여고생의 책상 위로 얼떨결에 불려나온 유령의 맨발은
사인(死因)을 기억합니까 낮밤으로 황천에 발 씻고
흰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다 덮듯이
다시 죽습니까 잠꼬대하듯이 이승을
다시 중얼거릴 때 있습니까

그곳에도 일요일 오전부터 결혼하는 망자들이 있습니까 검은 예복을 갖춘 자들이 스무 명 이상 모이는 자리마다 빽빽거리는 어린애 두세 명쯤 오고 그럽니까 흔들리는 이빨에 명주실을 매달고 뛰어다닙니까 흰 선분들은 아름답게 엉킵니까

이렇게 긴 오늘은 처음입니다

(자유로 中) - P94

약속을 정한 순간부터 나는 늦고 있다 각자 미래를 적어 오기로 한 순간부터 나는 빈손을 덜렁덜렁 흔들고 있다 이게 뭐람 이럴 거면 왜 미래를 약속한 거람 시는 이미 애가 타고 있고 나는 이미 엉엉 울고있다

(시 中)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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