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96(한 달 8)을 목표로 책을 읽었으나, 5권 모자란 91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정말 <달콤한 노래>, <시간을 지키다>, <엑스> 등 서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통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책들이 있는 것을 보면, 몇 권을 읽었다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긴 하다. 여하튼 한 주에 두 권을 읽는 다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 듯 하고, 올 한 해는 쓰기로부터의 자유도 얻었으니 올해 목표는 한 달 9(108)으로 소량 늘려보기로 한다.

 

여하튼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의 리스트를 쭉 훑어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부지런히도 읽었구나 싶어 기특하기도 하고 맞아, 나 이런 작가를 알게 되었지(예를 들면 켄트 하루프나 구의 증명에 최진영 작가라든가), 혹은 올해는 유난히 이런 책을 많이 읽었네 라든지 하는 소회가 생겨났다. 그래서 처음으로 한 해의 독서 결산을 내보고자 한다.

 

작년에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고전들을 많이 읽었다. 갑자기 고전에 흥미가 생겨서는 아니고, 단지 근무지인 어린이도서관에 어른 책으로 읽을 만한 것이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파리대왕>, <달과 6펜스>, <말테의 수기>(이를 어쩐다. 이 책은 기억이 안 나네, 전혀.), <모래의 여자>, <데미안> 등등. 그 중 <호밀밭의 파수꾼><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특히 집안이 망하면 그 다음으로 죽음이 찾아들기 마련이라는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의 문장이.

 

또 작년에는 독립출판물도 많이 읽었다. <서울의 3년 이하의 서점들>을 필두로 하여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 <한숨의 기술>, <최초의 집>. 처음 접하는 독립출판물이라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탐닉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은 그 나름으로 유니크하고 기존 출판물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콘텐츠를 담고 있는 대신, 또 그만큼 문장의 질이 떨어지거나 책의 말미까지 기획의 힘이 균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읽을 만큼 읽었다는 생각에 올 해는 독립출판물과 기존 출판물의 구분 없이 읽을 생각이다.

독립서점에 대한 책들도 많이 읽었다.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술 먹는 책방> . 퇴직하고 책방이나 할까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작은 서점에 대한 책들을 읽으니 그 꿈이 마구 자라났다. 하지만 아직은 꿈은 꿈일 뿐!

 

사회문제에 관한 책들도 다른 해 보다 많이 읽은 듯싶다. 뭐랄까. 삶이 안정되니, 투쟁할 기운도 나는 것일까. 페미니즘이 유난히 사회면에 많이 등장하던 한 해였지만, 그런 해일수록 피곤도가 더해져서 부러 읽는 것을 피했더랬는데 올해는 뭔가 더 많이 고민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여자들>, <요즘 것들의 사생활-결혼생활탐구>, <지연된 정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등 오른쪽을 가리키던 나의 관념들을 작게나마 틀어줄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작년에 읽은 단 한권의 책을 고르자면

역시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아니겠는가.

아니, 나의 30대를 통틀어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 바로 <사피엔스><호모데우스>인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아침에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잠에서 깨어 저녁쯤이 되면 시니컬한 무신론자로 변태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어떤 결정을 유보한 채로 두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나이건만, 신이 있다 없다는 쉽게 결단 내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신이 없다는 것은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며, 인간의 영혼 따위는 역시 없다는 것이며 고로 엄마는 그냥 죽어 없어진 것이므로 다시는 모녀상봉할 일이 없다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무신론자였던 하루를 통회하며 잠들고는 다음날에는 다시 독실한 신자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불완전변태같은 삶을 산다는 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싶지만. 신이 없어지고 있는 시대에 태어난 인간의 숙명이라 생각하면 또 견딜만하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를, 혹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걸친 경계인의 숙제라고 생각하면 뭔가 고뇌하는 지식인의 캐릭터가 덧씌워지면서 제법 으쓱해지기도 하고.

 

결산을 하고 나니 아쉬움도 남는다. 앞에는 길고 긴 한 해가 남아있으니 아쉬움을 다시 독서로 채워야 하겠다.

앞서 말했듯이 켄트 하루프의 <축복>을 읽고 나서 너무 좋은 나머지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로 화제가 된 하루프의 유작 <밤에 우리 영혼을>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불발에 그쳤고 그리고 최진영 작가의 책과 여전히 너무 좋지만 작년에는 <지구에서 한아뿐> 밖에 읽지 못했던 정세랑 작가의 다른 책들도 올해는 꼭 더 읽어보고 싶다. , 그리고 은유 작가의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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