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은 슬픔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 슬픔 속에는 상대가 살아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깊고 진한 ‘정(情)‘이 담겨 있습니다.(...) 이만큼 강렬하게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깊고 진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 中 27p.)

또한 사랑은 만드시 살아있는 상대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보이지 않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상대와 나눈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지요.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일 中 28p.)

슬픔의 아름다움이란 허망하고 외롭고 비탄한 가운데도 하루하루를 용기 내어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이 발산하는 빛과 같습니다.

(쌓여가는 슬픔 中 43p.)

나는 슬픔이란 곁은 떠난 사람이 다가오는 신호라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옆에 있을 때보다 더욱 강하게 가까이 있다고 느낍니다. 힘들 때 곁에서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베개를 적시는 밤 中 57p.)

다카코는 이런 시도 남겼습니다.

아름다운 말이 잇달아 떠올라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새로운 시가 잇달아 태어나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그 밤을 위해 건배
그 밤을 위해 건배


(어둠 속에서 홀로 베개를 적시는 밤 中 65p.)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 역시 슬픔의 밑바닥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인물이었습니다. <모차르트>라는 작품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은 질주한다. 눈물은 그 슬픔을 따라잡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눈물 中 121p.)

슬픔, 고독, 외로움, 불안의 감정들은 홀로 남겨졌을 때보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 강렬하게 느껴지죠. 그래서 누군가 "괜찮아?"라고 묻기에 "괜찮아"라고 답하고 나면 어쩐지 더 슬퍼집니다.

(보이지 않는 눈물 中 126p.)

요즘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말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제대로 보고 듣기도 전에 입을 엽니다. 반면 말을 상실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에 진실이 담겨 있음을 압니다. 말하기보다 듣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압니다.

(영혼에서 피어나는 꽃 中 132p.)

앞을 보여다오 뒤를 보여다오
아아, 떨어지는 단풍이여

이는 에도 시대 승려이자 시인인 료칸이 말년에 즐겨 읊었다는 시구입니다. 사람은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보이며 살고 죽는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앞면은 존경이나 사랑을 받는 일이요, 뒷면은 약하고 부족한 일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양면을 솔직히 드러내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료칸이 바라는 이상적인 삶이었습니다.

(읽고 쓰는 것이 주는 위로 中 160~161p.)

슬픔은 우리의 힘을 벗어난 우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슬픔은 내면의 가장 낮은 곳에 우리의 시작을 축복해줍니다. 앞으로 당신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을 마치며 中 20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