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말하자면 나는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좋아했지만,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열두 제자 같은 것. 사실 난 그 제자라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그 사람들도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예수님을 뜯어먹고 살았던 군식구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제자랍시고 그 사람들이 한 일은 예수님을 끌어내린 것 밖에는 없다.(135p.)

나는 예수님이 직접 그 사람들을 선택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잇지만, 그냥 임의대로 아무나 뽑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에 대해서 신중하게 분석할 만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난 예수님이 유다를 지옥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천 달러라도 걸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내가 천 달러를 가지고 있을 때 얘기지만 말이다. 다른 제자들이었다면 누구라도 유다를 지옥으로 보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하지만 예수님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136~137p.)

그렇지만 나는 정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땅에 떨어졌을 때 누군가가 내 몸을 덮어줄 거라는 확신만 있었다면 말이다.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을 바보 같은 구경꾼들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142~143p.)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비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내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할 거라는 점이다. 좋은 건 그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무덤에 집어넣고, 묘비에 이름을 새기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렇게 되면 내 주위에는 온통 죽은 사람들로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죽으면 그런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 누군가가 내 시체를 강 같은 곳에 버려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만은 정말 싫었다. 일요일마다 사람들이 와서 남의 배 위에 꽃다발이나 얹어 놓는 바보짓들을 하는 게 정말 싫었다. 죽고 나서도 꽃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207p.)

공동묘지 전체에 비가 내렸다. 묘지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차가 잇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또 미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저렇게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를 틀고는, 좋은 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들 갈 것 이었다. 앨리를 저렇게 내버려두고. 그 사실이 나로서는 도저시 견디기 힘들었다. 무덤 속에 있는 건 동생의 껍데기일 뿐이고, 영혼은 천국인지 어딘지에 있다느니 하는 허튼소리는 나도 잘 알고 있다. (207p.)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잇어. 사람이 타락할 땐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고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247~248p.)

이건 시인이 쓴 게 아니라,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 여기에서 그는..... 내 말 듣고 있니?
네, 똑똑히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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