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죽음‘으로 죽는다. 마르케스는 죽음을 "일생동안 경험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죽음에 다가서는 것, 특히 병으로 인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소극적이거나 단조로운 경우가 드물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전투를 치른다. 죽어가는 것이란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언급한 것처럼 "맹장이나 신장의 문제가 아닌, 삶... 그리고 죽음의 문제"이다.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하는 행위는 스스로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다. 죽어감에 대해 글을 쓰거나 녹음하는 사람들은 소극적으로 죽음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소극적인 인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죽음에 결국 항복했다 해도 그 자체가 어려운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죽음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 죽음에 맞서 투쟁한다.(죽어가는 삶 中. 32~33p.)

레지아 고모의 마지막 순간도 토니 모리슨의 1973년도 소설 <술라>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술라의 마지막과 비슷했을까?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고모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스쳐갔을까? 심한 피로감과 에너지 고갈로 "비명을 지르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는커녕 입술조차 떼기 힘든" 느낌이었을까? 고모는 죽음의 저편에 영원한 잠과 단비 같은 휴식이 있을거라 생각했을까? 혹시 죽음이 생각했던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까?(아르스 모리엔디 中. 39p.)

그는 <참회록>에서 맹수를 피하기 위해 우물에 뛰어들려 하는 나그네의 우화를 이야기한다. 그 우화에 나오는 우물 바닥에는 용이 한마리 있어서(...) 우물에 뛰어들어도, 뛰어들지 않아도 죽을 판국에 처한 나그네는 우물 틈바귀에 자라 있는 야생 관목가지에 매달려 버텨 보려고 한다. 그러던 나그네의 눈에 쥐 두 마리가 관목 줄기를 갉아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그네는 자신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체념한 그는 관목 잎에 두 방울의 꿀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 그 꿀을 핥기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이 우화를 통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우리에게 꿀이 전부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두 방울의 꿀... 가족을 향한 사랑과 내가 예술이라 불렀던 글쓰기에 대한 사랑조차 더 이상 내겐 달콤하지가 않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아르스 모리엔디 中. 43p.)

나는 죽음에 대해 글을 쓸 떄 죽음이란 평범하고 심지어 일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 내가 아는 사람이나 아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 어디에선가 늘 누군가는 죽음을 맞고 있다. 나는 내게는 지독하리만큼 슬프고 힘든 죽음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 죽음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나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는 과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나는 브렌다 유랜드가 <글을 쓰고 싶다면>에서 언급한 "미세한 진실"을 고수하려 하는 편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보편적인 것을 묘사하길 원할수록, 구체적인 것을 더욱 자세하고 더욱 진실하게 묘사해야 한다."(함께 죽는 것 中. 70~71p.)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또 어떤 멜로드라마에서 보면 자살은 일종의 고백과도 같다. 자살이란 삶을 감당할 길이 없음을, 혹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행위다."(죽음의 소망 中. 100p.)

우리들 역시 히스턴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특히 우리의 어머니가 죽으면-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허스턴의 <길 위의 먼지 자국>,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 메리 고든의 <어머니에 대하여> 등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딸들이 쓴 소위 "회고록"이라는 문학 장르를 보면,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사실은 동일한 가공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떤 이들은 어머니에 대해 직접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어머니에 대해 사려 깊게, 호기심을 갖고, 감상적이게, 비통하게, 빈정대듯이, 또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는 방식은 모두 달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어머니를 잃었다는 공통점과,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글을 통해 죽음이라는 불가사의한 대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존재한다.(돌고 도는 슬픔 中. 160p.)

죽으면서 미소를 짓는 일은 꽤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몸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 일종의 희열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인데, 이때 분비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은 사랑에 빠진 살람들의 뇌에 분비되는 것과 같은 물질이다.(돌고 도는 슬픔 中. 177p.)

"내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니 내 의지로 떠날 수도 없지."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지만, 우리는 아버지가 죽음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돌고 도는 슬픔 中. 186p.)

어머니는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였지만, 나는 여전히 슬픔으로 몸부림쳤다. 누군가의 품에 안겼던 사람을 빼앗아 가 데려다 놓은 곳이 천국이라면 천국이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닐것 같았다. 주님을 섬기다가 죽은 사람들은 행복할 지 몰라도, 그들을 빼앗겨 버린 불쌍한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돌고 도는 슬픔 中. 189p.)

그리고 바라건대, 간절히 바라건대 제 자녀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이제 그들의 엄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빛의 기둥, 그들의 무지개, 그들의 달 무지개, 그들의 해 무지개, 그들의 영광, 그들의 새로운 하늘이기 때문입니다.(돌고 도는 슬픔 中. 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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