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타인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한다. 세상이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안정적인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니, 그 문제는 사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일탈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세상이 문제가 많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미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정상적인 개인이라도 그 부조리한 상황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정치편, 192p.)

하지만 이렇게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동시에 진보로 분류된다는 언어적 문제는 한국 근현대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 등의 후기 자본주의자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로 불리기도 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에게는 정부의 개입을 주장한다는 면에서 실제로 후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 구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순수하게 언어적 혼란 때문에 발생한 문제만으로 보기는 힘들다.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분이 의도적으로 은폐된 면이 없지 많다. 자신의 재산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집단은 자신의 기득권을 이용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국인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후기 자본주의와 함게 묶음으로써(...)(199p.)

마지막으로 4(내가 노동자이고, 보수를 선택하는 경우)의 판단이 조금 이상한데, 이 판단은 단적으로 어리석다. 4를 선택한 사람은 자본가에 비해 가난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 대신,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를 선택했다. 그것은 이익을 고려한 경제적 판단도 아니고, 윤리적 판단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부유한 타인들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은 전혀 윤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4를 선택한 이가 있다면, 그는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누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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