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벌은 내 그런 교만의 대가였을까.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니 나는 엄중하지만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 내 죄목이 뭔지 알아냈다고 생각하자 조금 가라앉은 듯하던 마음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헀다. 내가 교만의 대가로 이렇듯 비참해지고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치자. 그럼 내 아들은 뭔가.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다는 말인가. 이 에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란 하느님이 그것 밖에 안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금 맹렬한 포악이 치밀었다. 신은 죽여도 죽여도 가장 큰 문젯거리로 되살아난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 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한 말씀만 하소서 173p.)
나는 신이 생사를 관장하는 방법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고, 특히 그 종잡을 수 없음과 순서 없음에 대해선 아ㅜ리 분노하고 비웃어도 성이 차지 않지만 또한 그러고도 그분을 덧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분만이 생사를 관장하고 있다고 신의 권위를 믿고 있었고, 불쌍하게도 깊이 공구(恐懼)하고 있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 193p.)
성경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기 직전에 큰소리로 남기신 말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라고 기록하고 있고 그 뜻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숨은 뜻은 ‘하느님, 하느님, 결국 당신은 안 계셨군요?‘가 아닐까. (한 말씀만 하소서 206p.)
나는 주위의 만류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들의 장례에 달려갔었다. 못할 노릇인 줄은 남이 말하기 전에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자식 잡아먹은 죄로 어떡하든 그 벌을 받아내지 못하면 따라 죽게 되든지 하다 못해 까무러치기라도 할 줄 알았다. 정신의 고통이 어느 한계까지 차올랐을 때, 기절할 수 있는 장치가 돼 있는 몸을 가진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내 몸과 마음에는 불행히도 그런 장치가 빠져 있었다. 내가 자신을 독종이라고 저주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한 말씀만 하소서 208p.)
나는 왜 이럴까? 그 부인의 하소연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거짓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말도 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심통이 났고, 내 고통에다 대면 당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 나는 정말 왜 이 모양일까? 어쩌자고 고통에 있어서조차 교만하고 싶어하는가? 내가 왜 주님을 느낄 수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주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나는 주의 눈 밖에 날 밉상만 고루 갖추고 있으니까. (한 말씀만 하소서 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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