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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시대의 철학 -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ㅣ 현대의 지성 120
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음, 손철성.김은주.김준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현대 철학의 두 거장이 테러시대를 진단하는 책...
현 시대를 테러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잉된 것이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 혹은 지식기반사회라는 명명이 친숙하게 들어오던 것이다. 테러 시대라는 명명은 이 시대에 대한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이 시대의 한 측면을 기술하기 위한 하나의 수식어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테러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논쟁점이고 어떻든 다른 시대와 다른 폭력적 행위 또는 상황으로서의 테러가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일반적 의미에서 테러 행위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는데 굳이 왜 지금 이 시대를 테러시대라고 명명하고 분석하고, 철학석 해석을 시도하게 되는가.
이 책은 9.11을 계기로 기획되고 쓰여졌다. 데리다는 이 '9.11'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많은 테러가 있어왔는데, 오직 '9.11'만 '9.11'이라는 날짜로서 명명되었는가. 촘스키의 [해적과제왕]이라는 책을 보면 미국이 자행한 수많은 테러행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명을 살상하거나 나라를 전복시키는 수 많은 공작과 테러행위들. 그런데, 9.11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어떤 사건에 대해서만, 그 사건과 유사한 또는 동일한 목표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행위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9.11'만 '9.11'이다.
미국이라는 이 초국가적이고 초법적인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저항과 테러가 있어왔는데, 이제 9.11이라 이름하고, 이 시대를 테러 시대라 하게 되었는가. 테러 행위 자체가 새로운 것은 역시 아니었다. 9.11을 9.11로 만들 수 있는 이 시대가 다른 시대와 다른 것이다. 미국인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이를 전세계적, 세계사적 사건으로 만들 수 있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자본질서, 미디어 질서가 어느 날 일어난 어느 사건을 9.11로 만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비판적이다. 지역성, 민족성, 국가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전의 테러 유형과 성격이 다른 무국적의 이 국제 테러리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아이러니다. 자본은 초국가적인데, 이 국제 테러리즘은 그것과 양립할 수 없다니. 특히나 데리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란다. 인간을 위한 어떠한 희망적인 프로젝트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마땅치 않지만, 명분상으로나마 선언적으로나마 희망을 얘기하고 있는데 반해 국제 테러리즘은 어떠한 희망적 메시지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존재는 얻어맞아도 싼 존재지만, 그 때리는 존재에게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황. 하버마스와 데리다는 유럽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버마스가 쓰고 데리다가 서명한 '우리의 혁신 : 전쟁 이후, 유럽의 재탄생'에서. 미완의 계몽은 계속되어야 한다. 계몽은 진행중이다. 계몽의 출현은 몇 백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계몽을 시작한 유럽이 근대의 정신을 추구한다면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고.
우리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