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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을 <적의 화장법> 과 함께 두번째로 만나보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혼자 있을때 무엇을 할까? 아마 쉬고 있는 자신에게 앵무새처럼 끊임없이 말을 걸고, 풍부한 경험과 추억속으로 자신을 데리고 다닐 것 같다.
그녀를 만난 <오후 네시>가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60년 전부터 함께 살아온, 여섯 살짜리 눈빛을 한 아내 쥘리에트와 나 에밀은 오랜 시간동안 꿈꾸어 오던 호적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드디어 이사를 오게된다. 43년간 도시에서 평화를 침해 당해온 우리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꿈꿔오던 '우리 집'을 갖게 된 것 이다. 그 평화 속에 무뚝뚝하고 말없는 이웃 베르나르댕이 매일 같은 시각에 찾아오고 우리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그를 내어쫒기 위해 지루한 강의도 해보고, 무례하게도 굴어보고,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지만 그는 불쾌하다는 표정만 지을뿐 지치지도 않고 같은 방문을 되풀이 한다.
아, 이쯤 되었을때 이야기가 갑갑해지고 반복되는 일상을 너무 길게 묘사하는 방식에 마음이 언짢아 지기도 한다. 우유부단하게 끌려 다니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인내를 해야한다. 드디어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선이 베르나르댕씨의 집으로 몇 발자국 길어질 테니... 그리고 점차 에밀의 몸에 털이나고 이빨이 길어지고 머리에 뿔이나며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갈테니.
죽음을 기다리는 늙고 멍청한 뚱보. 고통과 권태의 덩어리!
후반부에서 에밀이 베르나르뎅씨의 인생을 무의미한 것으로 단정하는 장면은 안타까웠다.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간에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의 삶을 판단하고 결론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일까? 비록 그 삶이 죽음의 연장으로 비춰진다 한들 말이다.
1년전의 완전 범죄를 회상하며, 노곤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 에밀은 마지막에 악마의 웃음을 웃으며 말한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고... 그러면서 묻는다.
너는 네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