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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나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

살다보면 서로에게 많은 못을 상대의 가슴에 박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것을 깨닫고

못을 빼어내어 준다해도

못을 빼어낸 자국이 깊이 남게 된다.

 

어머니는

몇개의 깊은 못자욱을

가슴에 안고 가셨을까?

 

- 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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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2-2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뿐 아니라 내 곁에서 나를 묵묵히 지켜오신 많은 분들의 가슴에는 또 얼마나 많은 못자욱이 있을가요? 참, 역시 님은 비와 함께 이렇게 등장하시는군요...
 


시간이 흐르고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이해하는 것이 생긴다고...

어디 한 두어 가지 이겠는가 ?

그중에서도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선생님이 왜 그말 했는지 알꺼다!"

하신 고3때 가정 선생님.

그 말씀이 정말 사무치던 스므 살이 있었다.

 

고3이었고 가정 시간이었다.

수능을 마친후라, 당연히 수업은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것 하면서 대신 조용히 하라고 형식적인 말씀을 

빠뜨리지 않으신

선생님은 교실을 사뿐 사뿐 걸으시면서 앞뒤로, 혹은 끼리끼리 뭉친

소란한 잡담 여기저기에 합류 하셨다.

우리는 최고참 말년이라 교복 블라우스 대신 사복을 입고 있었고

치마만 우리가 같은 학교 학생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도 그때 교복 마의 속에 빨간색 '미찌꼬 런던' 티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때 우리의 복장을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졸업하고 나니까 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그렇게 예뻐보이더라.

아무리 화장으로, 악세사리로 멋을 내도

교복차려입은 모습보다 예쁠수도 없고,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워지기까지 할 꺼다.

이제 며칠이나 남았다고 벌써 교복을 안입냐?

"졸업하고 어른되면 금방 선생님말 실감할꺼다"

 

그땐 정말 선생님 말이 공감이 안되었다.

소매가 닳아지고, 팔꿈치가 반질 반질해진 교복 마의.

줄였다, 늘였다를 반복하고, 철퍼덕 앉으면 여기저기 주름살처럼

구겨지던 교복 치마.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넥타이라

저는 혼자 늘 집안 아무데에나 편안히 누워있고,그래서

나는 선도부를 피해

학교 담장너머로 친구들이랑 던져주고 받게 했던 넥타이.

그것이 과연 그리워지고 이뻐 보일까?

 

그러나...

가정선생님의 저주(?)를 받아서일까?

정말 교복이 입고 싶어서 21살까지 몇번 교복을 입고

가까운 곳을 다녔다.

 

지금은 교복이 가장 예쁜 옷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고교때가 가장 예쁜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리 번뇌도 많고, 아픔도 많고, 심각한 것도 많던

그시절이...

 

함께 저주를 받은 그 교실 그 친구들도

지금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 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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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가고 싶다.

 

흐느적 흐느적 태양이 가까운 인도로 가고 싶다.

몸이 차가운 나는 다른 이들보다 더 추위가 버겁다.

겨울이 없는 따뜻한 곳에서 살고 싶다.

 

이제 다시 만나면 결코 잃지 않을것 같은 지연이는

이미 혼자 인도로 떠난것 일까?

 

태양에 시커멓게 얼굴을 내 맏기고,

희게 이만 드러내면서,

맨발로 거리를 내달리며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 

떠들어 대고 싶다.

 

나는 매달, 나는 매년 인도로 가고 싶다.

- 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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