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은 헐리우드의 컨텐츠 보고(寶庫)이다.
그는 20세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살아움직이는 인물이다. 82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시점부터 82년 <블레이드 러너>, 89년 <토탈 리콜>, 2002년 <마이너티 리포터>, 2002년 <임포스터>, 2003년 <페이첵>, 2007년 <넥스트> 등 유명 SF 영화의 원작자이다.
19세기 이후 우리의 상상력을 채워주던 헐리우드는 21세기 들어 아이디어의 고갈로 새로운 에너지의 충전을 기다리고 있다. 필립 K. 딕은 헐리우드의 상상력을 이끌어 가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최근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되면서 국내 출판사들이 그의 원작 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대부분 헐리우드 영화를 먼저 접하고 그의 소설을 읽고 실망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의 원작이었던 그의 소설은 대부분 플레이보이지와 같은 B급 잡지에 연재되었던 단편이다. 앞 서 개봉 영화의 원작들도 모두 단편이다.
비록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헐리우드 감독과 제작자에게 강한 상상력을 안겨주었다. SF 걸작선 시리즈만으로 그의 글을 평가하기에는 우리로써는 쉽지 않다. 그의 무한한 공력을 알기에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마치 유독 우리나라에 인기있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모음집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대히트를 쳤던 것은 출판사의 마케팅 효과를 제하고도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3965183327903.jpg)
최근 출간된 SF 걸작선 시리즈는 실상 영화 홍보의 힘을 업고 출간된 책이다. 다소 멋쩍은 행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소설까지 낮게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는 40여편의 장편과 100여편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한 때는 하루에 60쪽 이상을 써 내려갈 정도로 그의 다작 습관(?)은 신경쇠약을 가져왔다. 또한 71년 CIA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습격, 협박전화로 인해 시달림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다작으로 인해 저급한 읽을꺼리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가 63년 <높은 성의 사나이>로 휴고상을 수상한 이후로 SF 문학으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작으로 인한 저급한 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순수문학이 아니라는 점이 그의 소설을 실을 수 있는 공간적 제약을 가져왔고 B급 잡지의 특성상 흥미위주의 단편이 주류를 이뤘던 것이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 속에는 오묘한 깊이가 있다. 왜 헐리우드의 많은 제작자들이 그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고 있는가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판타지류의 작품은 대부분 작가만의 세계 구축을 중요하게 여긴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정의를 갖는다는 것은 작가의 미래관 뿐만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분명하게 가져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필립 K. 딕의 세계관은 비관과 혼돈의 세상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티 리포터>에서 보았듯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회색톤의 어두운 공간이 주요 배경으로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고뇌하는 심정은 그의 일상의 투영인양 지독하게 암울한 인물 묘사가 눈에 띈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한 암시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묘사를 통해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기 보다 영원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의 소설이 행복한 결말로 일관되었다면 헐리우드는 그의 상상력의 참된 맛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