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로맨스 소설에 대한 내 관심은 중학생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한창 로맨스 소설이 재밌어질 호기심 많은 사춘기였고, 몰래몰래 읽는 남들의 연애사에 가슴 떨려하며 재밌어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아주 작은 포옹이나 입맞춤에도 상당히 야하다고 생각하면서 남몰래 읽곤 했었는데, 어느샌가 이젠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에 떨떠름해 진 나이가 되어버렸다.

 

열일곱, 364일.

영어 원제는 <between>. ~의 사이에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이 영단어. between A and B라는 숙어를 달달 외우고 다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주는 이 영단어 하나만이 이 소설의 원제목이었다. 왜 이 명사도 아닌 단어를 제목으로 했을까라는 커다란 퀘스천 마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 between

  넌 뭘 뜻하는 거지? 책을 읽고 나니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공간. 실제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즈(엘리자베스)는 소설 등장부터 죽은 인물로 나와서 아직 저승으로 완전히 가지 못한 상태에서 이승을 떠도는 영혼으로 등장한다. 책의 시작이 이승에서 떠나는 순간이었다면 책의 마지막은 저승으로 가게 되는 순간이다.

  또 다른 것은 알렉스와 리즈의 사이. 리즈의 죽음의 순간 뜬금없이, 정말로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알렉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인물은 이미 1년전에 죽었다고 한다. 이 인물도 역시 저승과 이승사이를 떠도는 영혼이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그동안 이 동네에는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지 떠도는 영혼은 시종일관 이 두 인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소설이 진행될 수록 왜 이 알렉스라는 인물이 그토록 리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between이라는 단어를 모두 다 맞출 수 있다. 남자친구 리치라든지, 죽은 엄마라든지, 이복동생 조시와의 관계 등등.

  한국어 버전의 <열일곱, 364일>이라는 제목도 매우 좋은 제목이다. 원제 제목을 그대로 살리지 않고, 주인공 리즈가 살아온 기간을 정확히 나타낸 이 제목은 잘 선정된 것 같다. 리즈는 바로 자신의 18번째 생일을 한시간 정도 앞두고 죽어버렸으니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년을 꽉 채우지 못하고 하루가 모자란 열일곱, 364일이 된 것이다.

 

2. 영화화를 염두에 둔 듯한 묘사

  모든 소설은 눈에 그리듯이 묘사를 자세히 한다. 고전 소설에서는 자연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한다. 들풀의 이름이라든지, 나무 하나하나의 이름부터 묘사하기 시작하면서 구름의 모양이나 하늘 빛 등등까지. 이 책은 십대, 그 중에서도 소위 잘 꾸미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패션에 대한 묘사들이 많다. 입고 있는 옷의 색깔부터 재질, 옷의 길이나 소재, 유형까지. 집에 대한 묘사나 풍경에 대한 묘사보다는 우선 옷이나 화장과 장신구에 대한 묘사가 많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을 쉽게 시각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만약 이 소설이 영화화 된다거나 드라마화 된다고 한다고 가정했을때 딱 떠오른 것은 <CSI>의 한 에피소드 정도. 적당히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으면서 주인공 둘의 죽음이 결코 평범하지 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히 경찰관의 손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아니면 <고스트 위스퍼러>의 한 에피소드라면 정말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3. 사건의 개연성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어있는 상태라는 것 까지는 좋다. 근데 유령? 거기다 뜬금없어 보이는 소년의 등장까지?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들과 그 사건을 되짚어가는 활동상황이나 환경등에 대한 묘사는 사건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원래 판타지가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말이다.

  신체 부위에 닿으면 남의 기억속에 들어가 함께 볼 수 있고, 자신이 죽은 원인에 대한 기억은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옛날 추억들에 마음껏 빠져들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등. 그리고 건물 안으로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 막 들어갈 수 있지만 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 등의 설정은 앞뒤가 잘 안맞지 않았는가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식으로 약간 허술한 설정으로 인한 느낌은 사건의 개연성을 느슨하게 하기도 하였고, 갑작스레 펼쳐지는 이야기라든지 둘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조금은 조급하게 흘러가지 않았는가라는 아쉬움을 안게 하였다. 물론 작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 봐라, 여기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는 뒤에서 이런 부분에 필요하고 연결되는 것이라 미리 복선을 깔아 놓은 것이야, 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너무 추리 소설에 열광하고 있었나보다.

 

4. 발, 부츠와 러닝화

  리즈는 영혼인 상태에서도 추위를 느끼고, 발이 아픔을 느낀다. 특히 죽기 전 신고 있던 그 부츠때문에 괴로워한다. 너무나 힘들어 벗어버리고 싶어도 벗겨지지 않았던 그 부츠. 리즈는 생전엔 여러켤레의 러닝화를 소유했던 달리기에 빠져있던 소녀였다. 섭식장애와 달리기에 대한 욕망. 작가는 과연 리즈의 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일까?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 모든 사건이 다 해결되려 하자 리즈는 드디어 자신을 옥죄이고 있던 부츠를 벗을 수 있게 된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부츠란? 다리를 예뻐보이게 해 주지만 역시 굽이 높은 부츠는 다리를 혹사시킨다. 리즈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마음 상해하고 심란했던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부츠라는 것이다. 리즈라는 인물을 표현해 주고 있지만 하지만 아프다는 것을 부츠가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시종일관 부츠를 신은 리즈의 발이 아프다는 얘기를 여러번 반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신 러닝화는? 가볍게 뛸 수 있게 해주는, 나를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소품으로서 등장한다. 달리기는 건강에도 좋지만 리즈라는 녀석에게 있어서는 건강을 해치게 하고 더불어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달리기가 자유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리즈에게는 이 달리기가 자유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리즈에게서 발이란 자신의 고뇌와 괴로움을 보여주는 신체부위인 것이다.

 

  매우 중요한 듯 하면서도 결국은 그냥 아무일이 아닌 듯 스쳐간 단서들과 문제들, 그리고 우연성이 지나친 부분들에 대해서는 조금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말로 치닫는 소설 중후반은 대체로 마음에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나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중학생때 로맨스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순수함을 잃었던 것인지도.

  그래서 별점은 총 5개중 반개만 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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