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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신도 - 신숙주, 외로운 보국(輔國)의 길
김용상 지음 / 나남출판 / 2011년 11월
평점 :
참으로 무게감이 있는 책이었다. 원작 소설과 드라마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뿌리 깊은 나무> 덕분에 이 책 <왕도와 신도>를 더 현장감 있게 읽었던 것 같다. 박팽년과 성삼문, 한명회 등등 눈에 띄었던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니까 왠지 머릿 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기 쉬웠다. 그동안 말이 많았던 신숙주와 수양대군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이 책 속에서 신숙주는 지금까지의 평가를 뒤집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쓴다. 자신의 본심을 알리기 위해서 작가는 신숙주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숙주의 노력과 수양대군의 대업에 왠지 모를 정당성이 생기게 되고, 모든 주인공들에게 그렇듯이 주인공에 대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나쁜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다. 독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김용상 작가는 신숙주에 대한 이미지 체인지에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긴 내용과 책 마지막 결말과 그 후 부분, 그리고 신숙수를 스케치한 김영 작가의 그림까지 책은 구석 구석까지 꼼꼼했다. 책 제목도 정말 잘 지어졌다. 왕도와 신도라니... 그리고 부제는 신숙주, 외로운 보국의 길이라는 얘기는 오늘 아침 타계한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을 떠올리게 했다. 어딘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문도 받았던 김의원과 그리고 보국의 길을 위해서 백성과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던 신숙주. 시대의 흐름을 너무나 앞질러 갔기에 오히려 많은 이들로부터 질타를 받거나 적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면이 둘에게서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에 비하여 김문수 지사의 119사건은 어떠한가. 정치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정치 관련 뉴스가 더 신경쓰이게 되었는데, 참 119사건은 분통터지게 하는 일이었다. 권력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뻔뻔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더 재밌었던 것은, 광화문과 경복궁, 그리고 그 앞의 골목들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종로 거리를 걸었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종로를 거닐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경복궁 뒤편의 미술관에 다녀와서 경복궁을 통해 광화문으로 나와서 인사동으로 걸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한성을, 그리고 우리들의 서울을 떠올려 보았다. 서울 곳곳엔 정말로 많은 옛 터가 남아 있다. 물론 새로 지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으로 완전히 보존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교보문고 앞에도, 보신각도, 그리고 덕수궁 미술관으로 가는 덕수궁 돌담길까지. 왠지 걷고 있으면 따뜻해 지는 서울의 옛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시끄러운 도심 속에서도 경복궁 안에 들어가서 하늘을 바라보니 새파란 하는 아래 경복궁의 지붕만이 보여 시야가 탁 트였다. 그 뒤로 보이는 산의 아름다운 모습까지 조선을 살아왔던 신숙주와 수양 대군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여서 참 좋았다. 광화문쪽으로는 종종 가지만 정작 광화문 안쪽 경복궁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그저 지나가기만 했던 적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종종 경복궁 안을 거닐어봐야겠다. 사극도 보고 이런 시대 소설도 보고 나니 더 그 느낌이 살아나는 것만 같아서이다.
임금이 어리다는 것, 그리고 그 임금을 보좌한다는 것과, 보국을 한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 없고, 다른 사람의 반대가 없는 경우도 없다. 특히 조선 시대는 유교적 사상이 너무나 뿌리가 깊어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팽배해 있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눈 밖에 나곤 했는데, 그런 시대에 살았던 신숙주의 마음 고생에 포커스를 맞춘 소설의 내용이 오히려 색다르고 흥미로웠다. 한국의 시대극이 얼마나 재밌는지 점점 알게 되어서 이런 식의 소설들을 더 읽어보고, 그리고 더불어 올바른 역사 이해하기를 위해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내가 얼마나 우리 한국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 또한 부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후련한 느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2011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