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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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만 보면

마치 살인사건이 일어난 추리소설같죠?

이 제목은 작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

'벚꽃나무 아래'의 첫 장면과 매우 관련 있습니다.


단편 '벚꽃나무 아래'의 첫 부분입니다.

벚꽃나무 아래는 시체가 묻혀 있어!

이건 믿어도 돼. 왜냐하면 벚꽃이 저렇게 멋들어지게 핀다는 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잖아.

<벚꽃나무 아래> 가지이 모토지로, 위북 197쪽

매우 강렬한 첫 문장이에요.

벚꽃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 이유가 시체가 그 밑에 묻혀있기 때문이라니요...

섬뜩한 상상력이면서도 번뜩이는 재치입니다.

독자로 하여금 순식간에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첫 문장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뒤가 궁금하고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걸까 하고 읽는 참에

이 단편은 단 3장만에 끝나버립니다.

그럼 가지이 모토지로라는 작가가 누구인지 짚어볼까요?

그의 단편중 제일 유명한 것은 '레몬'일 것입니다.

번역서도 '레몬'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적이 있고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처음으로 낸 작품집이 '레몬'이었으니까요.

'레몬'이라는 단편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그냥 목적없이 여기저기 거닐다가

마루젠이라고 하는 서점겸 문구점에 작가는 자주 들렀습니다.

실제로 작가는 그 마루젠에서 서양화가들의 작품집을 보는 걸 즐겼다고 하는데요

이 단편의 주인공도 떠돌다가 마음에 들었던 과일가게에서

레몬을 하나 사고 마음에 들어하다가

갑자기 서점에서 책을 마구 꺼내어 쌓아둔 뒤

그 위에 뜬금 없이 사온 레몬을 올려두고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마음속으로는 레몬이 폭탄이 되어 서점이 폭발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소재도 상상력도 독특한 단편이지요?

그런데 가지이 모토지로의 길지 않은 작가 인생에서

이 레몬이라는 단편은 큰 인기를 끌고 유명해서

실제 모델이 되었던 마루젠의 폐점 소식이 알려졌을 때

교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예술서적 코너에 레몬을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이번 단편집의 번역가는 총 3분입니다.

세 분 모두 일본어 전문 번역가 모임 '쉼표온점'의 멤버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전 일본소설을 읽을때 일본어 특유의 번역체를 선호하지 않는데

이 분들의 번역은 아주 자연스러워서 읽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어요.

안심하고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총 12개의 단편이 실려 있으니 4개씩 맡아서 하셨을까요? ^^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작가연보가 아주 자세해서

가지이 모토지로의 작품과 삶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각 단편의 끝머리에는

이렇게 출처를 적어 놓아서 더 좋았습니다.

어디에 몇년도에 실렸는지를 말이죠

단편 한개를 읽을 때마다 적혀 있는 연도를 바탕으로

작가 연보를 뒤적이며 그 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면서 읽었습니다.

그랬더니 더 잘 이해가 되었어요.

어떤 건강상태였는지, 그 해에 몇 개의 작품을 썼는지,

작가의 상황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작품의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마음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 연보가 자세해서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01년 생인 작가는 딱 성인이 되려는 시점에 문학에 빠지게 됩니다.

형의 영향으로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등의 작품들을 탐독했죠.

저도 대학원 시절 일본 근대 문학 전공을 해서 이 작가들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는데요

참 마음에 드는 소설들이 많았어요.

아름다운 문체와 기구한 작가의 삶 등을 알게 되면서 더 작품들에 애정이 생기기도 했어요

작가 가이지 모토지로는 또 특이한 것이

'이과생 문학소년'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과쪽으로 진학을 했으면서도 꾸준이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후에는 러시아 작가인 톨스토이 작품도 많이 읽었다고 해요

그의 단편 '눈 내린 뒤'에서는 주인공 남편이 아내에게

러시아 작가의 단편 내용을 이야기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도 그 러시아 작가는 톨스토이겠지요.

이 단편집에 실려있는 12개의 작품들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K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유명한 단편인 '레몬' 이외에도

'K의 죽음'이라는 단편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작가 본인이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 결핵이 옮게 된 첫 이유가 같이 살던 할머니로부터였다고 해요

그 시절에는 할머니들이 입으로 먹던 사탕을 뱉어서 손주들에게 주곤 했잖아요

할머니가 결핵에 걸린 분이었는데 입으로 사탕을 주는 바람에

5명의 손주가 모두 초기 결핵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안타까워요...

단편의 주인공은 작가 본인의 모습을 투영해서

방황하고, 몸이 건강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분신을 그려넣었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듯

우울하지만은 않은 투명하고 맑은 작가의 내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통해 아름다운 단편집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다시 꺼내어 읽어보고 싶은 단편집입니다.

- 본 도서는 컬처블룸 카페의 서평단을 통하여

출판사 위북으로부터 제공받은 것임을 밝힙니다.

서평은 개인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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