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1
김승옥 지음 / 더클래식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진 Mujin 10km

<무진기행>, 김승옥 8쪽


김승옥의 <무진기행>

책 제목은 너무 익숙했지만 정작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이 시리즈로 나오는지

그 영광스런 첫번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주인공이 장인어른 회사에서 승진을 앞두고

머리를 식힐 겸 고향 무진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은,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끝맺음도 무진을 떠나는 이정비를 지나치며 끝났다.


부끄럽지만 처음에 제목의 '무진'이 무엇을 뜻하는 줄 몰랐다.

책 첫 페이지를 펼치고 나오는 김승옥님의 싸인 부분을 보고서야

아 그 지명이구나! 라고 깨달았다.

책 날개에 적힌 곽상순씨의 '작품 해설'에 나와 있듯이

무진기행에서도 주인공은 음악선생과 어설픈 사랑을 나누다가

다시 원래 있던 곳 서울로 떠나면서 전하지 않은 쪽지를 남긴다.

12편의 단편들 속에는 정말로 남자 등장인물의 사랑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들이 빼곡했다.

그 와중에는 읽기 불편한 부분들도 있었다.

여성을 겁탈하려 하는 계획을 세우는 부분이라던가

(단편 '염소는 힘이 세다')

여성을 가볍게 보는 부분들이 종종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시대상을 감안하면서 그래도 끝까지 잘 읽어 나갔다.

매 작품의 마지막에는 완성년도가 적혀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와 나'와 '서울의 달빛 0장' 두 편만 70년대 작품이고

나머지는 모두 60년대 작품이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무진기행/서울,1964년 겨울>, 김승옥, 80쪽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단편의 한 부분이다.

이 문장이 참 곱씹게 될 정도로 마음에 들어왔다.

추억이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만들다니...

기쁜 추억을 생각할때 마음이 벅차고 간지럽고 신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슬픈 추억을 떠올릴 때는 고즈넉하게 의기양양해지다니..

곳곳에서 김승옥의 문장이 왜 훌륭한지,

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문장을 필사하는지 알게 되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하게 하는 문장이 많았다.

잘 쓰지 않는 고유 명사를 집어내 쓰는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동안 외국 문학에 치중해서 읽어 왔는데

작년 말을 기점으로 갑자기 한국 작가들의 소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작가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오게 되어 김승옥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어서 또 무엇을 붙들어야 한다.

오늘 중으로 무언가 확실한 걸 붙들어 둬야한다.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을 순조롭게 연속시켜주는 것을 붙잡아둬야 한다.

<무진기행/차나 한 잔>, 김승옥, 188쪽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

염소는 힘이 세다, 죽어버린 염소도 힘이 세다.

앓는 어머니를 소공동 쪽으로 밀어 보낼 만큼 힘이 세다.

<무진기행/염소는 힘이 세다>, 김승옥, 226, 243쪽

어떻게든 좋은 문장, 좋은 단어를 고르고 골라 썼다는 느낌이 진한 문장도 있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그리고 될대로 지껄이는 듯한 문장도 있었지만

그 모든게 김승옥의 문장이었다.

한때 일본 근대 문학을 많이 읽었던 시절이 있는데

그 때 작가들 대부분이 영문학 아니면 불문학 전공이었다.

김승옥도 그 중 하나로 불문과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으로 창작 의욕을 상실하고 절필한 작가는

단편 <그와 나>에서 마치 자신은 아닌 것처럼 반대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절실하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이었는지...

이렇게 좋은 기회에 김승옥의 작품 12편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뜻 깊었다.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제1권의 찬란한 스타트를 함께 했으니

앞으로의 그 여정에 기꺼이 동참할 예정이다.

2권도 3권도 기대해본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 작성된 서평임을 알려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