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단편의 한 부분이다.
이 문장이 참 곱씹게 될 정도로 마음에 들어왔다.
추억이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만들다니...
기쁜 추억을 생각할때 마음이 벅차고 간지럽고 신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슬픈 추억을 떠올릴 때는 고즈넉하게 의기양양해지다니..
곳곳에서 김승옥의 문장이 왜 훌륭한지,
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문장을 필사하는지 알게 되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하게 하는 문장이 많았다.
잘 쓰지 않는 고유 명사를 집어내 쓰는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동안 외국 문학에 치중해서 읽어 왔는데
작년 말을 기점으로 갑자기 한국 작가들의 소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작가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오게 되어 김승옥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어서 또 무엇을 붙들어야 한다.
오늘 중으로 무언가 확실한 걸 붙들어 둬야한다.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을 순조롭게 연속시켜주는 것을 붙잡아둬야 한다.
<무진기행/차나 한 잔>, 김승옥, 188쪽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
염소는 힘이 세다, 죽어버린 염소도 힘이 세다.
앓는 어머니를 소공동 쪽으로 밀어 보낼 만큼 힘이 세다.
<무진기행/염소는 힘이 세다>, 김승옥, 226, 243쪽
어떻게든 좋은 문장, 좋은 단어를 고르고 골라 썼다는 느낌이 진한 문장도 있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그리고 될대로 지껄이는 듯한 문장도 있었지만
그 모든게 김승옥의 문장이었다.
한때 일본 근대 문학을 많이 읽었던 시절이 있는데
그 때 작가들 대부분이 영문학 아니면 불문학 전공이었다.
김승옥도 그 중 하나로 불문과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으로 창작 의욕을 상실하고 절필한 작가는
단편 <그와 나>에서 마치 자신은 아닌 것처럼 반대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절실하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이었는지...
이렇게 좋은 기회에 김승옥의 작품 12편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뜻 깊었다.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제1권의 찬란한 스타트를 함께 했으니
앞으로의 그 여정에 기꺼이 동참할 예정이다.
2권도 3권도 기대해본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주관적인 생각에 의해 작성된 서평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