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야만 - 20세기의 역사
클라이브 폰팅 지음, 김현구 옮김 / 돌베개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클라이브 폰팅의 이 책을 보다가, 돌베개의 출판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 혹시 홉스봄의 장기 19세기 3부작을 대체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학회' 모임을 할 때 읽을 '커리'로서의 성격이 강한 책이라는 뜻이다. 교양서와 교과서의 중간쯤 되는 책이란 뜻인데, 사실 별거 없다. 총론의 성격을 가지고 다루는 대상 전체를 조망하고 있으며, 세미나 발제하기에 부담이 없을 정도로 서술은 평이해야 하지만 주요 주제는 빠짐없이 다루어야 하며, 그 수준은 발제 내용 보면서 읽으면 슬슬 읽힐 정도까지 되어야 한다(중립과 정확성을 강조하는 교과서와는 다른 교양서로서의 이미지를 갖추어야 하지만 적당히 진지하기도 해야 하는, 균형이 필요한 장르라 하겠다). 이 위치에서는 홉스봄의 책이 어느 정도 정전의 위치에 오른 강력한 저작이긴 한데 한길그레이트북스 세 권이니 가격도 상당하고 (까치에서 나온 <극단의 시대>를 합하면 10만원 훅 깨짐) 무엇보다 분량이 1,500쪽에 달하는지라(역시 '극단'을 합치면 2,000쪽에 달한다)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이 책이 그런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이 요건을 꽤 충족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책의 구성인데,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주제별 서술을 택하고 있어 영역별로 툭툭 치고 나가는 세미나의 특성에 따라 발췌독이 가능하다는 점. 홉스봄 책도 그런 (적어도 차례 상으로는) 그런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둘째는 분량인데, 700쪽 정도로 간소(?)한 편이고 마지막 결론을 제외하면 21 챕터라 적당히 발췌하거나 2챕터씩 하면 한 학기에 대충 맞고, 1년 커리를 써도 된다. 셋째는 서술인데, 인용예나 통계들로 미루어보아 정론적인 서술은 아닐 것으로 보이지만, 사례들이 풍부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나중에 끝나고 술먹으면서 썰풀기가 좋음(??). 넷째는 셋째와 이어지는데, 넓은 커버리지. 오늘 아침에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농경으로 인한 토양 유실 관련한 책을 내가 근래 읽은 기억이 있는데, 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구먼...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그 내용이 이 책 4 챕터에 나온 내용이라는 걸 알고 망연자실했을 정도. 그만큼 많은 내용들을 넓은 주제에 걸쳐 뿌린다.   


홉스봄 책만큼 평단의 지지를 자랑하지 못 하고 있는 점은 단점이라 할 만하나, 그거야 뭐... 기번 책과 싸우는 로마통사가 언제나 슬프듯... 여튼 20세기에 한정하여 전체를 조망하는 읽기라는 면에서는 오히려 좋은 책일 수도 있다. 깊이로서는 홉스봄의 권위를 따라가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읽기라는 면에서는 그 평이성이 오히려 장점이 된달까? 위에서 '커리'감으로서의 자격을 논했지만 이는 일반인들이 20세기의 세계사를 통사적으로 해석하는 시작점으로서도 꽤 괜찮은 책이라 하겠다. 다만 '커리'감이 보통 '혼자 읽으면 잘 안 읽히지만 모여 읽으면 어떻게든 읽어지는' 성격을 가진 책이라는 점에서, 읽는 데 있어 눈누난나 슥슥 읽어치우겠다는 계획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 하겠다(일단 700쪽도 적은 분량은 아니기 때문에 하루에 챕터 하나 잡고 노는 날 따지면 한 달짜리 독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