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 을유세계사상고전
임근동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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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기 전에 우파니샤드의 구성을 먼저 짚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파니샤드는 1차적으로는 베다와 부속서의 일부분이다. 해당 문헌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문헌 중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일부분을 우파니샤드라 칭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파니샤드의 언어는 (베다의 형성 시기에 따라) 범어보다도 오래된 고어인 후기 베다어로 구성되기도 한다. 여기서 저본 문제가 발생하는데, 역자는 베다 교정기관이 펴낸 1958년 판본을 택했다. 원어를 바탕으로 문장을 옮기고, 여러 가지 판본의 번역본/주석을 바탕으로 뜻을 적었다.

나는 방금 문장을 옮기는 것과 뜻을 적는 것을 분리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역자가 직역을 택했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이게 말도 안 되게 미친 짓이라는 데 있다. 원문 속 문장의 뜻이 극히 모호하여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파니샤드의 작자들은, 대명사를 이용하여 지칭하는 대상을 숨기고, 많은 부분에서는 논리적 연결구를 생략해 버리고 있다. 언어의 특성을 잘 활용한 건지 언어 자체가 괴악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어의 어근을 형태소로 쪼개는 방식에 따라 문장의 뜻이 달라지기까지 하므로, 원문을 놓고는 뜻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내가 인도 고어 전공은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 이는 우파니샤드가 문장의 의미를 스승이 직접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만 전달 가능한 비전(秘傳)으로서의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을, 문장에 뜻을 담는 데 주력하는 대신 Word-by-word로 틀만 정확히 옮겼다는 것, 미친 짓이라고 부를 만하다.
일반적으로 보면, 어쨌든 문장의 뜻이 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의역을 하는 게 당연하다. 역자가 자주 참고/대조를 위해 소개한 라다크리슈난과 막스 뮐러의 문장들도 그렇다. 뜻을 통하게 하기 위해 다른 단어를 사용하거나 문장 구조를 바꾸거나 부연한다. 그렇게 해야 문장 자체의 뜻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만한 게 되니까. 하지만 임근동의 문장들은, 특히 초기 우파니샤드의 경우, 문장만 놓고 보면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는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 판본을 읽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책에 대해 이만큼의 글을 쓸 이유가 없을 것. 임근동이 택한 방법은 오히려 정공법에 가깝다. 글 앞쪽에서 밝혔듯, 우파니샤드는 스승의 설명을 통해 모호한 글을 밝혀 가며 읽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밝혀진 진리를 자기 스스로의 것으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전달하되, 그 뜻을 궁구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 실제로는 정석이다. 이를 완벽하게 수행할 방법은 어떻게 봐도 찾기 힘들지만, 책의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은 주석이다. 독자가 조금이라도 모를 법한 부분, 깊은 이해를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모두 풀어내 주석 안에 담으면 알아서 골라 읽으며 어느 정도는 뜻을 밝힐 수 있다. 
스승이 짚어서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 주석을 바탕으로 설명을 하려면 주석의 성실성과 분량이 중요하다. 이 면에서 임근동의 작업은 좀 기가 질릴 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베단타 철학의 대부 샹카라의 주석을 (샹카라의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한 힌디어 본을 참조해 가며) 번역하여 소개하고, 앞에 소개한 뮐러의 영어 번역과 라다크리슈난 영어 번역, 사뜨야브라따 씻단따랑까라의 힌디어 번역을 대조하여 뜻을 풀어 놓는다. 참고를 위해 하리끄리스나다싸 고얀다까 등의 의견과 상키야 철학에 관한 내용도 옮겨 적어 두었으며, 단어의 뜻을 풀기 위해 <어근집>과 각종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이용하고, <범화대사전>을 바탕으로 불교의 한역 용어와도 맞추어 둔다. 주석의 양이 너무 많아, 어떤 쪽에서는 두 줄의 텍스트를 설명할 공간이 모자라 다음장까지도 넘어가는 수준이다.

이러한 방식에는 분명한 일장일단이 있다. 막말로, 우파니샤드의 뜻을 정확하고 빠르게 깨달으려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된 텍스트는 적합하지 못하다. 엄청난 양의 주석을 문장에 다시 적용하고, 앞 문장과 다음 문장을 잇고 뜻을 파내는 고된 작업 없이는 텍스트 자체를 맑게 읽어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읽고 소화하기 좋은 번역으로는 라다크리슈난의 영역이 더 좋을 것으로 보인다. 전에 인도철학 강의하던 분도 추천한 번역이고, 임근동이 소개한 라다크리슈난의 문장들을 보면 문장들의 뜻이 꽤 직접적으로 다가온다(라다크리슈난 자체가 샹카라의 아드바이따 베단따 연구를 많이 했다는 점도 큼.). 이재숙의 번역본은 읽어 보지 못했는데, 베다와 마누법전 등의 고대 문헌을 연구한 분이라 잘 하셨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게 의역인지 직역인지 내가 알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직접적으로 추천받은 바는 없어 옮겨 두지 않는다(한길그레이트북스 20~21권).
반대로 우파니샤드를 어렵게, 복잡한 방식으로 궁구하면서 읽는 것을 원한다면(“전공자의 방식으로” 두들겨 파 볼 생각이라면) 이 책도 상당히 좋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렵다. 이샤 우파니샤드의 경우 50쪽도 안 되는 내용을 2~3일에 걸쳐 두세 번 읽고 옮겨적기도 해 봤지만 아직도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찬도그야/브리하드아란야까 등은 (미안, 아직 읽기 전입니다.) 읽기도 전에 질려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펑펑 샘솟는 분량이다(200여 쪽에 각주 1400개, 1700개......). 
을유문화사가 참, 무서운 짓을 했다. 가격은 상당한 편이고 한길사 판에 비해 수록된 수도 적지만, 어쨌든 이 책, 괜찮은 것 같다. 다른 판본들을 읽을 때 참고할 만한 요소가 많은 꼼꼼한 자료목록과 깔끔한 편집. 나중에 다시 한 번 꺼내 참고해 볼 만한  책 중 하나가 될 듯하다(왠지 인도철학 전공할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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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2013-05-1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휴 대리님을 계속 스토킹하다가 이렇게 정체를 밝힙니다.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는 빅시스터.

neubauten 2013-06-2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