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웨더포드는 예전에 김호동 교수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수업 들을 때 영어 책을 제본하여 보라고 주셔서 알게 된 저자인데, 알라딘에서 알림을 보내줬길래 찾아보니 국내에서도 꽤 출간이 되어 있었네요.


1. 칭기스칸, 잠든 유럽제국을 깨우다.

제가 교수님께 받아서 본 책은 <Genghis Khan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입니다. 이걸 번역해서 이 책이 나오죠.


세부적인 서술이나 사료 해석에는 문제가 있으나 거시적인 시각으로 읽기 쉽게 썼다며 추천해 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영어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후닥후닥 읽어서 한 달만에 다 읽었던 걸로 기억해요. 문장도 평이하고 서술도 편하게 돼 있는데다, 몽골제국이라는 게 진짜 흥미진진한 탐구대상이거든요. 여튼 이 책은 유목제국의 발전과 멸망을 '근대적 제도의 도입과 발전'이라는 틀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몽고제국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인두세, 화폐, 교역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것이 제국을 유지하는 접착제로 작용했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던한 제국'의 등장이 서양을 모던하게 만들었다는 유사역사학적인 발언까지는 나가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번역은... 제가 영어로만 봐서 제대로 됐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영목 + 사계절이면 뭐 믿을만 하죠. 문장이 평이하고 “본격 학술고전”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 크게 불안하진 않습니다. 추천!


2. 칭기스 칸, 신 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

알라딘이 (저자 신작이라고) 소개해 준 책입니다.


이 책은 위 책만큼은 땡기지 않는군요. 몽고제국이 적은 인력으로 광대한 땅을 지배한 데는 (정복 말고 관리 차원에서의 지배 말이죠)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가 현지 인력의 적극적 활용이고 둘째가 이를 이용한 제국 내의 “물자/정보 흐름”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1번 책이 후자를 강조했다면 2번 책은 전자를 얻는 기술로 '종교적 관용'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나가면 위험한 주제 중 하나죠. 실제로 몽고군의 지배 과정에서 무조건 종교적 관용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특정 종교가 몽고에 개기기를 택했을 경우 상당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선택적 관용에 가깝죠. 이걸 너무 과대평가하면 책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책도, 제국의 모던함만을 강조하진 않는 균형감이 있기 때문에 동양사 교수가 굳이 추천하지 않았겠습니까 ㅎ. 아주 불안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마케팅 포인트를 이렇게 잡아서 그런가, 마치 칭기스칸이 종교적 관용의 상징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곤란하죠. 정말 많이 죽였다구요.


3.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저는 이 책이 오히려 궁금하군요.


 라시드 앗 딘이나 그루쎄 책 등은 남성 위주의 역사서술이거든요(몽고비사는 아직 못 읽어봤는데 여성배제라는 차원에선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칭기즈칸의 딸들에 대한 서술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궁금할 수밖에 없지요.


다만 이 경우 정사가 여성을 배제했다는 것은 '정사로 인정받는/검증된 자료들' 내에서는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위험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다른 자료들을 끌어다 메우는 방식으로 점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1번의 위험인 사료의 해석 상 문제의 가능성이 더해지면 어이쿠, 몽고는 여성의 국가! 하며 역사를 과대평가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라시드 앗 딘의 <칭기스칸기>나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등과 같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그리고 2, 3의 역자가 이종인 씨라는 게 좀 맘에 걸리는군요. 이 분 너무 많이 하십니다. 역서가 무려 298권이에요. 한 달에 한 권씩 해도 25년 걸릴 분량의 책을 내셨단 얘기죠. 물론 정영목 씨 같은 분도 200권이 넘긴 하는데 이분은 교양서나 문학 위주의 작은 볼륨을 많이 하시는 반면 이종인 씨는 촘스키, 호이징가, 카잔차키스에, 얼마 전 화제가 된 칼라나티 책까지. 너무 전방위로 많이 하십니다. 물론 위에 적은 웨더포드의 책들은 문장이 평이하고 아주 전문적인 1차문헌들을 정확히 번역하는 게 핵심인 책들이 아니라 큰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참, 이 책(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은 여기서 소개할 계재가 아닌 듯하여 패스합니다. 뭐라고 적을 만한 건덕지가 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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