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밥값이 이십만원 대를 찍는 동안 책 구매비가 0인 것에 살짝 충격받고(......) 서울역 철도문고에 들렀다. 원래는 창비 폴란드 문학 선집 을 보러 갔는데 없어서...... 책을 둘러보다가 갈랑의 천일야화 번역본을 발견했다. 어머 나 몰라 저건 사야 해.

 

 

 

 

 

 

 

 

 

 

 

 

 

 

 

그 자태가 심히 아름답다(1,3,5권 표지) 


알라딘 가서 열린책들 서평을 보니, 그림도 상당히 괜찮을 듯하다. Dalziel's Illustrated Arabian Nights' Entertainment 에 수록된 그림들을 찾아다 넣었다는데, 화면으로 봐도 상당히 두근두근한 퀄리티. 옵셋 인쇄본을 보면 정신줄을 놓을 듯하니, 당분간은 서점에서도 좀 피해 다녀 봐야겠다(......). 얘기가 샜는데, 이 서평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일단 아래 옮기고, 이상한 부분은 볼드처리하도록 하겠다.

 

(전략) <천일야화Les mille et une nuits>의 국내 최초 완역본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을지도 모른다.<천일야화>라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책인데, 어째서 여기에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느냐고. 하지만 국내에서 흔히 정본으로 알려진 리처드 버턴판 <아라비안 나이트>는 선정적이고 잔인한 내용을 첨가하여 <천일야화> 원전을 재구성하여 만든, 일종의 <각색> 작품인 셈이다. (중략) <천일야화>의 정전canon은 바로 프랑스의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의 불역본이었다.

 

문제는 세 가지다.

1. 국내 최초 완역본이라는 말은 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린책들의 천일야화는 갈랑 번역에 대한 최초 완역이고, 범우사의 1992년판은 버턴 번역에 대한 최초 완역이다.

2.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가 각색본이니까 정본은 갈랑 아니겠냐는 질문 또한 무용하다. 그 둘은 시리아본과 이집트본이라는 독립적 저본을 각각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3. 세 번째는, 갈랑 역시 저본을 유럽 실정에 맞게 번안하고, 저본에는 들어있지 않은 내용들을 가필하여 자신만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재구성했기 때문에 천일야화 자체의 정본이라 부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즉, 어느 책을 읽어도, '원본 천일야화'의 정본이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래는 그런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풀어 놓은 얘기인데, 어차피 출처가 영문 위키라 설득력 면에서 조금 문제가 있다. 그래도 뭐 읽으실 분들을 위해 링크 투척하고 시작(요 중에서 Arabic Versions / Modern Translations 부분을 참고했다.). http://en.wikipedia.org/wiki/One_Thousand_and_One_Nights 


1. 두 가지 저본
천일야화에 대한 언급이 12세기 카이로 문헌에서 발견된다(이때는 페르시아 전통 하에 있었을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저본이 속한 지역이 아랍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아랍 전승이 점차 페르시아 전승을 대체한다. 그 결과로 9세기 바그다드 주변과 13~14세기 카이로 주변을 다루는 두 개의 이야기 군이 생겨난다. 그 과정에서 두 개의 아랍어본(혹은 계열)이 형성되는데, 시리아본과 이집트본이다.

시리아본은 이집트본에 비해 짧고, 이야기 수도 적다.  Calcutta I판과 Leiden판 등이 있는데, 갈랑이 활용한 것은 시리아본 중 Leiden 판이다(14~15세기에 발행된 것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것). 비교 연구를 통해 1984년에 새 Leiden판을 내놓은 Mushin Mahdi는, Leiden 판이 천일야화의 원형에 가장 가깝고, 다른 판본들의 뿌리가 된다고 주장 하는데, 여기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Leiden 판본이 중세 아랍어의 향취를 잘 담고 있다고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한다고 한다.
이집트본은 시리아본의 형성 이후에 형성되는데, 상당히 많은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버턴 번역의 저본이 된다. 시리아본의 형성 이후에도 여러 가지 구비 전승들을 끌어들였고, 일부 판본들 가운데는 19세기까지도 가필이 이루어진 판본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집트 전승에 더 많은 이야기가 포함되는 데는 완전판을 원하는 서양인들의 요구가 크게 작용했다고 하는데, Mahdi에 따르면, 이는 정리할 때마다 늘어나는 구비 문학의 특징일 수 있으며,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2. 갈랑과 버턴 번역의 차이는? 
열린책들에서 내놓은 이번 번역은 시리아본(Leiden)을 번역한 갈랑의 천일야화의 완역이다. 따라서 버턴의 번역에 비해 들어 있는 이야기의 수가 적고, 좀 더 원형에 가깝다. 갈랑 자신이 텍스트를 유럽 실정에 맞게 번안 하였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실제 갈랑은 자신의 텍스트에 대해 그 의도가 '교화'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http://en.wikipedia.org/wiki/Antoine_Galland). 이는 버턴이 성적·폭력적 내용을 첨가하였다 는 주장이, 뒤집어 놓고 보면 갈랑이 그런 내용을 빼고 번역했다 는 주장과 경쟁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닐 것 같아 보인다. 솔직히 이쯤 되면 학계의 논쟁이 붙어야 할 부분이고, 사람들이 옆에서 풀무질이라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다 -_-

게다가 갈랑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용하여 Leiden 판에는 들어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물론 다른 시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썼지만) 창작하여 집어넣었기 때문에, 몇몇 이야기는 원 텍스트에서 찾아볼 수도 없다.이는 천일야화 자체가 시리아본에 고정된 내용들과 별도의 내용을 포함하여 더 발전했고, 그 이야기들 역시 천일야화에 포함되는 게 맞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완전한 천일야화 전체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노력 때문에, 한때는 이집트본이 정본으로서의 지위를 좀 더 강하게 얻기도 했다.

이러한 첨가와 가필을 살린, “전집성” 천일야화에 대한 최초의 번역은 E.W. Lane의 번역인데, 출판 과정에서 훼손을 당했다고 한다(검열당하고, 일부는 각색당함.). 이후 John Payne의 번역본은 대부분의 내용들을 살려 번역·출간했으며, 이를 참고하여 진행된 버턴의 번역은 성적·폭력적 함의들을 더 강조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검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비출판된 경우가 많다고). 여튼 이 중에서 버탄의 번역을 번역한 것이 범우사의 1992년판 완역본. 열린책들의 평이 맞는 부분은 이런 것들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꼭 옳은 얘기는 아니라 하겠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다채로운 내용을 담은(그러나 어쨌든 19세기까지도 가필이 이루어져 이야기들의 진위가 의심스러운) 이집트본을 보려면 버턴의 번역을 기반으로 한 범우사판을, 15세기 이전까지 확립된 시리아본-라이덴판의 텍스트만을 천일야화로 간주하고, 갈랑이 추가한 부분을 일종의 가필로 용인한다면 갈랑의 번역을 기반으로 한 열린책들판을 보는 게 적절한 선택이라 하겠다(개인적으로는 이집트본은 페인 번역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도 들지만, 여튼 완역된 건 버턴/갈랑 이니까......).

 

 내가 이 10권 세트를 고등학생 때 5권까지 읽다 만 것 같은데, 별천지다...... 주인공이 고난에 처하니까 하인이 지나가는 유대인을 죽이고 염소를 뺏어 오는걸, 무슨 가게에서 물건 사오듯 당연하고 담담하게 묘사하는데, 오오 아랍의 패기 오오...... (잠깐 이건 뭔가 얘기가 또 샌다.)

 

 

 

3. 위키 추천 번역본
이에서 볼 수 있듯, 원작에 가까운 이야기나 정본을 찾는 것은 현재 한국 땅에서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데, 원 아랍어 저본을 확정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선택이 작용하는 그런 층위를 모두 이해하기도 힘들고, 그것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판단 중 어느 것이 옳을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만큼 이 사회는 아랍 전공자로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수능 제2외국어는 아랍어입니다, 형제님들). 여튼, 이 여러 가지 판본들 중, 위키는 아래 두 가지의 번역을 주목하고 있다.

 

시리아본
Mahdi가 재편집한 Leiden 판을 Husain Haddawy가 영역한 1990년 번역판이 추천을 얻고 있단다. 아랍어를 충실하게 옮긴데다, 읽히기도 잘 읽힌다고. 물론 Leiden 판에 충실하게 번역했기 때문에 알리바바 등의 친숙한 이야기들이 대거 탈락했는데, 이것들은 1995년에 추가로 출판된다.

 

이집트본
Malcolm C. Lyons와 Ursula Lyons가 번역하고 Robert Irwin이 서문/각주를 맡은 펭귄의 2008년 3권 전집이 있다고 한다. 버턴 이후 최초의 이집트본 완역이라고......(웃긴 건, 이 Irwin이 시리아본으로 위의 Haddawy의 번역을 추천했......). Calcutta II 판을 이용했다고 하며, 버턴이 완역한 이후로는 최초의 이집트본 완역이라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위키 특성상). 이 판본의 특징은, 구비전승을 살려, 읽히기 좋은 입말을 만드는 데 주력한 판본이라는 점. 판본들마다 누락되기도 하는 시들을 모두 번역해 넣었는데, 한계 상 아랍어 시가 지닌 고유의 음률까지 살리지는 못 했다고 한다.

 

참고1. 보르헤스는 자신의 소설집에서 레인 번역을 몇 번 언급하는데, 막상 그가 “바벨의 도서관” 선집을 간행할 때 택한 판본은 갈랑의 번역이다.

참고2. 레인 번역은 Google Books를 30분 정도 뒤지면 찾을 수 있다. 내가 구한 건 루틀릿지의 1865년판으로, 조카가 다시 편집을 했다고 함. 존 머레이의 1859년판도 구했는데, 대조는 안 해 봤다(앞으로도 안 하겠지...). 갈랑의 번역도 구해 볼까 했는데, 어차피 불어라 못 읽을 것 같기도 하고 하여 포기했고, 페인 번역은 9권이나 돼서 전체를 다 찾으려면 상당히 골치가 아플 것이다. 20세기 이전 번역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짜 책을 구하려면, 레인 번역이 가장 적절할 듯한데, 역시 축약본스런 검열이......(대신 이 책은 하비의 삽화가 예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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