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아름다운 책에 빠졌었다. 정말 그런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메신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다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기분 좋게 부유하는 그런 느낌? 기분 좋은 것이 내 몸을 감싸고 나는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느낌도 있다. 따뜻한 방에 들어간 그런 느낌... 평범하게 살던 에디가 카드를 받는다. 어떤 것을 지시하는 카드다. 우여곡절 끝에 에디는 그 일을 하게 되는데... 슬프고 기쁘고 아름답고 가슴 찡한 그런 일들이 펼쳐진다.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매혹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만 말할 수 있을 뿐. 하지만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세계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에디가 변해가는 과정이다. 그 일을 하면서 에디는 삶이 변하는데.. 멋지게, 정말 멋지게 변한다. 그것은 희망을 대한 끈을 다시 움켜잡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하는데, 그것이 압권이다. 칭찬을 한가득 담고 싶은 책,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따뜻하게 해준 책! 이 정도면, ‘책도둑’의 부활이라고 말할 만하다.
대통령이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까? 좀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은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를 보면서 생겼다. 과학이 필요한 걸까? 이 책의 저자인 이종필은 “정치인이나 대통령이 물리학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과학적 사고’는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런가? 이종필은 “우리가 정치인들과 대통령으로부터 고통받는 이유는 이분들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 과학적 ‘사고 두뇌’가 모자라기 때문이다.”라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한다. 사실일까? 『뉴욕 타임스』가 2004년 대선에서 당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우리는 그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안도하고 있다”라고 쓴 걸 보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뉴욕 타임스』의 말은 농담 같아 보이지만, 한낱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다. 이 땅에서만 하더라도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지도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비과학적인 사고’로 뭔가를 결정해 국민들을 당황케 한 적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아니, ‘당황’에서 끝나면 다행이었다. 비명 지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대통령을 위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종필은 책의 서두를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으로 장식했는데, 소제목들이 흥미롭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2 -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3 - 터무니없이 낮은 엔트로피, BBK 사건’등으로 제목만 보더라도 사회 현상과 과학적인 것을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흥미롭다. 또한 쉽다. 과학적인 원리를 사회 현상으로 풀어 설명해주니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고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놀랍다.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하게 과학을 대중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 등장하다니! 책 제목은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인데 읽다 보니 ‘나를 위한 과학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정말 ‘맞춤형 책’이었다. 그동안 과학을 대중적으로 설명해주겠다는 책들이 많았는데, 다들 생색내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진짜다. 더군다나 과학적 사고에 의한 비판 의식까지 알려주니 있으니 그 유익함이 두배 세배가 된다. 왜 이런 책이 이제야 나온 걸까? 이 책을 읽어 흡족하다. 책 제목은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지만 실상은 ‘우리를 위한 과학 에세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