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멀리 떠나버린 손녀딸을 기다리며 편지를 쓴다. 그런데 그 편지가 이상할 정도로 가슴을 벅차게 한다. 자신의 이야기와 딸의 이야기기, 그리고 손녀딸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히 묻어나서 그런가보다. 또한 여성 3대의 삶이 묻어나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마음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겪어야 했던 방황과 갈등은... 정말 진솔해서 그런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좋구나, 좋아.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책.
한국소설은 감동이 없다고, 일본과 유럽소설에 비해 그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박범신의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고산자’의 처음 몇 장을 읽지 않아 그 생각을 했고, 중간에 그 생각을 거듭 확신했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생각이 ‘사실’로 바뀐다는 걸 알았다. 지난 밤, 박범신의 ‘고산자’에서 김정호의 삶을 따라가는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먹먹한 감동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단순히 지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자 ‘조선의 역사’였던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웠고 훌륭하다 못해 예술적이었다. 나는 지금 소설의 진지한 매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정할 마음이 없다. 어떤 수식어를 동원해서라도 칭찬하고 싶다. 장인 고산자, 그 남자를 완벽하게 살려낸 박범신. 그들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는다. 기분 좋게,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