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
홍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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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회장의 사위인 소설가 김형진은 한회장의 부탁과 주문으로 현산이란 집안어른의 일대기를 부탁받는다. 이런 일과 별개로 y군에서는 갖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현산은 한회장의 집안의 자랑이다. 독립투사이기 때문이다. 갖은 고향에서 대조적으로 서교수의 부친이 친일파로 규정짓어진 상태이고 해묵은 앙금은 대립과 송사가 벌어지게 된다. 이과정에서 일대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는 사실들이 세상에 나오고 현상의 핏줄들도 하나씩 찾게 된다.

우선 이 소설은 참 친절하다. 몇 단락이 지나면 셜록홈즈가 사건을 설명하듯 지난 일들을 잘 정리해주기 때문에 이른바 복습을 시켜준다. 그래서 복잡하게 얼힌 이야기의 인물들의 구조를 쉬게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정리가 잘 된 구조는 한회장의 일가에서 중국과 일본으로 친족의 범위가 확대되어 간다. 중국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현산의 아들과 일본의 에다는 그 전형이다.

다른 하나는 현산과 송암의 역사로..독립투사로 알려진 자의 친일행각과 친일파로 알려진 독립운동전력, 그리고 현산과 송암의 대립관계에서 친구로 밝혀진 것과 그자손들의 관계들이다.

즉 소설은 확대된 친척과 대화에서 자신과 타국의 입장을 들어보고 현산과 송암으로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구조로 되어있다. 타국의입장..중국의 현산아들과 에다와 그의 친구들과의 대화..그리고 전향의 과정에서 나오는 평가의 물음과 역사적 기록의 한계와 문제점을 생각해 볼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성적 접근과 상대를 받아들이는 기본적 자세도 안되는 서로간의 감정싸움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같다. 읽는 이중에는 저런 변절의 모호함을 갖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묻어두는 과거를 지적할수도 있고 급히 치닫는 아시아의 민족주의등을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역사의 발굴, 재조명이 최근에 이른바 <만만하고> <명백한>것으로 포장되어지고 그것을 현재의 기반으로 삼거나 이용하려는 조류가 강한다고 느낀다.  이는 과거 역사를  비교함으로 현재의 자신을 우위론적으로  합리화는 역사자료의 도구화로 보여지는데 이는 쉽게 여러 세력에 앞잡이가 될수있다.

정적을 제게하는 수단으로, 지금의 결점을 덮어두고 안주하려는 시도로써, 그리고 자극제로써 가 그것이다.

정적을 제거하려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역사는 철지난 신문기사의 가치도 안된다. 결점을 덮어두려고 밝혀지는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심판에서 벗어날수 도 없다.

해서...역사는 인간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반성하는 자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반성하는 양심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고 이는 인간이 스스로 자신에게 양심을 허용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2차대전의 유태인학살이 반성되지만 지금의 수많은 학살이 덤덤이 자행되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한 반성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증이 아니겠나..

그럼 형진의 사전답사와 그의 사학과 교수의 안목으로 역사적 양심을 깨울수없다는 말인가... 신이라도 불러 역사를 물어야 하는가..

아무리해도 안되는 인간의 한계가 있으므로..지금의 인간을 부인하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봄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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