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F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것은 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모두가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색 톤의 칙칙한 배경과 바로크 풍의 중후한 의자는 항상 빠지지 않는 배경과 소재다. 아버지는 근엄하게, 어머니는 넉넉하게, 아들은 듬직하게, 딸은 애교스럽게….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가족 구성원 각자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걸맞는 가장 그럴듯한 표정을 짓는다.

가족사진의 역할은 거실 벽의 가장 눈에 잘 뜨이는 위치에 걸려 모든 방문객들을 향해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족이랍니다.”손님들은 예의상으로나마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유~ 이 집의 아들딸들 참 잘 키워놨네.”라는 식의,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치켜세우는 그런 칭찬을 말이다. 하지만 365일 ‘즐거운 나의 집’이란 있을 수 없고 어느 집구석이든 이런저런 갈등과 반목이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 가족사진은 쳐다보기도 싫은, 낯선 한 장의 칙칙한 인화지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태희(배두나 역)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찜질방의 사환이다. 매일같이 이런저런 잔심부름에 시달리지만 아버지는 제대로 된 월급을 주지 않는다. 태희는  아버지를 견딜 수 없어 가출을 결심한다. 가출하기 전날 밤 태희는 가족사진 중에서 자신의 모습만을 칼로 오려낸다. 그리고 아버지의 금고에서 자신의 노동에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만큼의 돈을 빼내간다. 스무 살이란 어쩌면 그렇게 맹랑하고 쿨하게 집을 뛰쳐나갈 수 있는 나이인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가출하고 싶어 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그에게 무책임한 가장이니, 아버지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 하며 비난의 화살을 날릴 태세를 취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게마츠 키요시의 <비타민F>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바라본 가족 이야기다. 가족을 소재로 한 일곱 편의 단편에는 가정보다 직장 일을 우선시 하고 자녀교육에 관한 일은 아내에게 맡기는, 핵가족의 전형적인 아버지가 화자로 등장한다.

가족생활에 싫증이 난 한 남자는 ‘다른 인생을 살 가능성도 있었다. 다른 아내를 얻어 다른 아이들을 낳았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던가.’ 라고 독백한다. 가족을 지긋지긋해하면서 또 다른 스위트홈을 꿈꾸는 것이 비단 이 남자뿐일까. 가족사진 속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마다 다른 꿈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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