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결혼과 가족 제도는 오늘날처럼 일부일처를 중심으로 해서 부모 형제가 같이 사는 방식이 아니었다. 부부 관계를 맺은 남자는 저녁때 여자의 집에 가서 묵고 이튿날 새벽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찾아가지 않으면 부부 관계가 끊기기도 했고, 여자든 남자든 반드시 한 사람하고만 부부 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그렇게 부부 관계가 불안정했기에 남녀는 항상 긴장감을 느껴야 했고, 여자 쪽이 수동적인 처지가 되기 쉬웠다. 그러한 여자들의 고독과 고뇌가 헤이안시대 여성문학의 발달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청령일기蜻蛉日記> <이즈미시키부일기和泉式部日記>가 대표적인 예다.
-56 각주쪽
풍류를 알고 아직 독신인 남자가, 전날 밤 어느 여자네 집에서 잤는지 새벽녘에 돌아와서 졸린 눈을 비비며 벼루에 먹을 곱게 갈아 후조 편지를 정성 들여 쓰는 것은 정말 운치 있다. 흰 속곳 여러 겹 위에 황매와 옷과 다홍색 옷을 입었는데, 그 흰색 홑옷이 심하게 구겨진 것을 내려다보면서 편지를 다 써서 바로 앞에 있는 뇨보한테 주지 않고 일부러 밖까지 나가 시종을 부른 후에, 무슨 말인지 조용히 이르고 편지를 줘 보내는 것이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편지를 보낸 후에도 혼자 상념을 빠져 밖을 내다보면서 경전 여기저기를 조그만 소리를 읊조리는데, 안쪽 방에서 아침 죽과 물을 준비해서 뇨보가 갖고 왔지만 계속해서 책상에 앉자 책만 본다. 조금 흥이 나는 곳이 소리 높여 읽는 모양이 멋있어 보이고, 손을 씻은 다음 노시만 입은 뒤에도 허공을 향해 법화경 6권을 읽는 모습이 마음에 스미는 듯하다. 그러는 동안에 상대방 여자네 집은 가까운 곳에 있는지 아까 심부름 간 시종이 답장을 받아 와 손짓하자, 독경을 멈추고 그 답장을 펴 본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경을 게을리 하면 벌을 받게 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