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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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님 제삿날, 갓 시집온 새댁이 밤중에 일어나 제삿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나갔다. 인기척 소리에 사랑방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얘야, 아직 이르지 않느냐?"
그러자 며느리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님,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시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며느리는 자신만만했다. 왜냐면 시집 오기 전에 친정집에서 몇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 첫번째 오줌이 마려울 때 일어나면 그때가 바로 제삿밥 지을 때가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우스개 같은 옛날 이야기지만 시계가 없던 시절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흔히 제삿날 밤에는 여인들이 잠을 설치며 연신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며 별자리를 찾거나 달이 있는 밤이면 달을 쳐다보며 시간을 재었다.
제사가 있는 날만이 아니라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날 우리 조상들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달력이 없어도 날짜는 정확히 알고 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알았다. -93쪽

꼭두새벽부터 어둑새벽, 찬새벽, 밝을녘 등등으로 아침시간을 나누었다. 저녁나절부터는 해거름, 해넘이, 어스름저녁, 이렇게 숫자표시보다 훨씬 따뜻하고 시적인 시간개념으로 사물을 표현했다.-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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