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벌루션 No.3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백수 생활의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우울증의 기미가 느껴지는 분, 이 소설 읽어보시면 도움 되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백수 2년차다. 이 세상에 어떻게 편입해야 할지 참으로 눈앞이 깜깜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사주의 취업운에는 '아직 노력이 멀었다. 더욱 더 정진하라'고 나오니 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편입하리라'며 남몰래 내공을 쌓고 계신 분들, <레벌루션 NO.3>읽으며 힘들 내시라.

이 소설을 만화로 각색해도 손색 없으리라. 유쾌한 명랑 학원물로 읽힐 터이니. 군데군데, 배를 잡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다. '삼류 남고생들의 일류 여고 축제 기습 작전'이라는 스토리 자체가 황당무계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읽을 때는 전혀 유치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가슴 두근거리며 '이번에는 어떤 작전이? 얘들아 제발 성공해라'며 읽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더 좀비스' 멤버들의 우정과 의리에 찡해지기도 하면서.
그 끈끈한 멤버쉽에서 '우리는 친구 아이가'라는 맹목적 우정 지상주의가 읽히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에겐 영화 <친구>에서와 같은 냉혹한 칼부림은 없다. 이들에게 실수는 있어도 배신은 없다. '왕재수'인 야마시타는 언제나 크고 작은 실수로 조직을 뒤흔들어 놓지만, 절대 축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를 던져 주고, 웃음을 유발하는 귀여운 광대로 그려진다.

야마시타와 대척점에 놓여 있는 인물이 있다. 벌써 '순신'이라는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순신 장군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더 좀비스'의 순신은 차별을 뼛 속 깊이 체험하며 자라난 재일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절대 찌그러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편입하고자 속 깊이 실력을 쌓는다. 고등학생 치고는 어렵겠다 싶을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서와 법서 등을 탐독하면서. 게다가 그는 주먹에 있어서도 야쿠자들이 모셔가고 싶을 정도로 실력파다. 그래서 그는 재일한국인임에도 왕따 당하기는커녕 짱으로 치켜세워지는 것이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재일한국인 소년을 너무 멋있게 그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하긴, 이 소설을 읽는 일본인들에게나마 재일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업'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좋은 소득일 것이다.

3류 소년들의 명랑 활약기를 읽어나가다보니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떠오른다. 절대 1류가 될 수 없지만 1류에 편승하고자 기를 쓰는 가운데 벌어지는 개그 콘서트. 그러나 <레벌루션 NO.3>의 소년들에게는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1류의 토대 없이 1류에 편승하려고 몸부림치는 짓은 승산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 그러니 차라리 1류의 세계에 바람 구멍이나 내보자는 것이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그러나 3류는 3류대로 실력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준엄한 현실이다. '더 좀비스'의 조력자인 아기나, 문무를 겸비한 순신 같은 존재를 떠올려보자면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남는 아쉬움 하나. 이 시대의 여성 마이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유쾌한 소설이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는 점. 가네시로 가즈키는 남자이니 그렇다 치고 은희경씨는 왜 여자이면서 굳이 남자들의 이야기를 쓴 걸까. '여성 작가이지만 남자들의 이야기도 쓸 수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기보다 '여성 작가들이여, 여자 이야기를 제대로 써다오'라는 주문을 하게 된다. 남/녀, 남자소설/여자소설의 어설픈 이분법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의 독력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제대로 여성을 구현하는 소설들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에서이다. 어둡거나 내밀하거나 불륜을 저지르거나 모성을 구현하는 식의 여성성은 이제 지겹지 않는가. 이제는 명랑한 처녀들을 만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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