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결혼이다
우애령 지음 / 하늘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대학물을 먹은 20대 초, 중반의 다른 여자 친구들처럼 페미니즘 서적을 탐독했고,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주먹을 꼭 쥐어보는 타입에 속한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먹히지 않기 위해 독신도 꿈 꿔 봤고, 여러 다른 형태의 가능성들도 생각해 봤다. 결혼한 언니, 아줌마들을 붙잡고, “결혼해보니 어떻든가요?”하고 숱하게 물어도 봤다.

결혼에 대해 아기자기한 판타지를 가진 또래들을 보며 “쯧쯧.. 저렇게 결혼에 대해 환상을 기지고 있다가 코가 깨지고 말지”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코가 깨지더라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건강한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고 고쳐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결혼”이라는 거대한 제도를 두고 답 안 나오는 고민을 한참 동안이나 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애령씨의 <결혼은 결혼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화끈한 정의도 아니고 ‘결혼은 결혼’이라는 동어반복의 문답 속에 과연 내가 찾을 답이 있을 것인가 하는 미심쩍은 물음과 함께. 책 날개 안쪽에 붙어 있는 사진 속의 우애령씨는 후덕하고 인자한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결혼을 통해 그닥 고생해 본 것 같지 않은 인상이다. 아니면, 고난을 현명하게 지나쳐 왔던가.

우씨는 후자 쪽에 속한다. 6대 독자에다 일곱누이를 둔, 유학생활을 거친 철학자가 그의 남편인만큼, 그의 결혼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물론 그녀의 털털한 성격 덕도 있겠으나 사회복지와 심리학 전공, 오랫동안의 상담자 역할을 통해 쌓은 내공이 그녀의 한 세월을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눈물콧물 흘려가며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맞이했을 그녀는 이제 독자들과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결혼 혐오증’ 내지 ‘결혼 공포증’에 걸린 나 같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녀의 에세이를 통해 카운슬링을 받아보기 바란다.

그녀의 입담은 후덕한 외모만큼이나 구수하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솔직한 프로포즈’라는 광고문구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재미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전과 동화와 전설, 신화에서부터 최근에 이슈가 됐던 소설과 영화에다 상담사례, 알기쉽게 풀어놓은 심리학 이론이 겹치면서 결혼에 대해 동서, 고금에 걸친 통찰을 가능케 한다. 사실, 진정한 상담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대답을 찾게끔 하는 자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결혼을 하라, 마라 또는 이혼을 하라, 마라’는 식의 점쟁이나 해 줄 수 있는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잠시 우씨의 얘기를 해 본다. 우씨는 미국 유학 시절, 박사학위를 코 앞에 앞두고 있는 남편과 폐렴 걸린 아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 공부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기말 시험을 포기하고 만다. 그 때 지도교수였던 크리슈나는 우씨를 찾아와 “나는 동양식 결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일이 어려울 때 아내가 양보해야 하는 것을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에 나오라고 권유하러 온 건 아니예요. (중략) 그렇지만 혹시 시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부분은 있는 힘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하러 왔어요” (99-100p)라고 격려한다. 크리슈나는 무작정 학교로 돌아오라고 설득하지 않으면서, 모든 선택은 우씨에게 맡겨 두었던 것이다. 크리슈나의 현명한 조언처럼 우씨 또한 모든 열쇠를 독자에게 맡겨두고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나는 왜 결혼 때문에 신경증을 앓아야 했던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았다. 그것은 ‘어째서 결혼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지나치게 완벽하고 이상적인 답을 찾으려 했던 데서 온 것이었다. 물론 결혼은 잃는 만큼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만큼 잃는 것이 있다. 우씨는 이러한 인생의 순환원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순환원리를 받아들인 다음에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질문은 보다 현실적이다. ‘아내와 어머니로써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그런 다음 결혼의 좋은 점이 문제점을 능가할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여자들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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