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군신위 - [초특가판]
박철수 감독, 방은진 외 출연 / 플래닛 엔터테인먼트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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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간다, 안 간다 하면서 간더더니 이제 k선배도 혼기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올 설에 잠깐 만난 k선배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결혼 예식의 청사진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1.부조를 받지 않는다. 2. 뷔페 음식 대신 정성스레 준비한 국수를 대접한다. 3.주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자에게 보내는 글을 지어 낭송한다.

 혼례, 장례, 돌잔치 등, 대부분의 예식들을 마뜩잖아하는 내게 이런 이야기들은 신선한 감흥을 준다. 매뉴얼대로 잘 하는 것도 어렵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일도 어려운 일일진대 나는 팔짱만 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위에서 말한 1.2.3은 소위 현대화된 ‘웨딩 패키지’라는 틀에서 뛰쳐나가려는 노력이지, 혼례 문화 자체를 재조직하려는 시도까지는 아니다. 사실, 조상들의 전통 혼례를 잘 들여다보면, 번거롭기는 하여도 ‘분리-전이-통합’의 단계를 착실히 밟으며 의미와 내용을 잘 조직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까 각종 예식에 대한 나의 마뜩잖음은 전통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시시하게 ‘패키지-화’되어버린,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키지-화’는 장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얼마씩 적립하면, 장례지도사가 기본 절차에 따라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 상품’이 유행하고 있지 않은가. 울긋불긋한 상여 대신 링컨콘티넨탈 리무진을 타고 가는 세상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절이기에,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는 전통 장례에 대한 기록 영화처럼 느껴진다. 초혼과 반함, 빈상여놀이 등 현대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의식들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상복 입은 여인네들이 그렇게 목 메게 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도 ‘코미디’다. 흐벅진 허벅지가 어둠 속에서 경련을 하고, 기다란 장총이 푸른 하늘을 가르고, 로타리 다방 레지 아가씨들이 남행열차를 부른다. 씨가 불분명한 어린 자식이 병나발을 불고, 흑돼지는 잡혀죽기 싫어 꽥꽥거리며 뛰어다니고, 보험 신청서가 부지런히 왔다갔다한다.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이 각기 문상을 와서 주먹질을 하고, 염불과 찬양이 서로 소리를 드높인다.

 이 시끌벅쩍한 와중에 때로 뜨뜻한 눈물 방울도 얼룩진다. 자전거포 주인은 진작 자전거 페달을 고쳐주지 않아서 사고가 난 거라며 자기 탓을 하며 울고, 다방 레지 아가씨는 하룻밤만 같이 자줬어도 노인이 십 년은 더 살았을 거라며 울고, 수십 년 전 ‘도라꾸’를 몰고 도망쳤던 윤 기사는 돈가방을 싸들고 와서 잘못했다고 빌며 울고, 머리채를 붙들린 채 쫓겨났던 막내딸은 다시 가족의 품에 안기면서 운다.

 이처럼 격식 있고, 또한 난장판이며, 애 끊는 눈물이 넘치는 장례 장면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리란 사실을 박철수 감독은 예감했던 것일까? 90년대 중반, 경상도 시골의 한 장례 장면이 불과 10여년 만에 이렇게 생경해지고 말았으니. 

하긴, 눈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회사로 출근해야 하고, 허니문의 달콤함을 음미하기도 전에 밀린 서류파일 더미를 해치워야 하는 것이 우리네 조건 아닌가. 그러니 의식은 점점 간소화되고, 그에 따라 우리네 희로애락도 점점 간소화되어갈수 밖에. 어쩌면 우리는 일상과 의례를 깔끔하게 구분해주는 패키지 상품에 고마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도하며 내쉬는 그 한숨 속으로, 질펀하게 감정을 풀어헤쳐놓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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