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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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거의 익명에 가깝다 싶을 만큼 흔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이름을 쳐보면 수많은 ‘동명이인’들이 좌르르 떠오른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자들은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배우 또는 벤처사업가나 프로그래머로 성공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동명이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서 오는 감정은 좀 복잡하다. 우선적으로는 동명의 존재에 대한 반가움도 없지 않지만, 내 고유한 존재감이 희박해지는 듯한 느낌 또한 떨쳐버릴 수 없다.

동명의 존재가 ‘아주’ 유명한 인물이라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질 것이다. 가령, 역대 대통령이나 억대 연봉을 받는 톱스타, 또는 신출귀몰한 탈옥범과 이름이 같다면? 그 이름을 듣는 사람들은 슬며시 웃거나, 누구랑 이름이 같네요? 라며 기어이 아는 체를 하거나 애매하게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유명한 동명의 존재와 비교당하며 무명의 보통사람인 자신을 자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결국, 동명이인의 존재가 원망스러워지고, 자신의 이름 또한 원망스러워지며, 그 이름을 지어준 부모마저 원망스러워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 이름 때문에 괴로워하다, 기어이 이름을 바꿔버리고야 만 인물이 있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고골리’다. 「외투」란 작품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 바로 그와 동명이인이다. 인도계 미국인이며, 이민 2세대인 주인공은 완벽한 인도인도, 완벽한 미국인도 될 수 없는 애매한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고, 또 한편 이상한 이름 때문에 고뇌한다. 그는 ‘고골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사회에 적응해나가기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우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니킬’로 개명하고 세련된 뉴요커의 삶에 편입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러하기에 그는 다음과 같은 발언마저 서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이름이란 없다는 말이야. 나는, 사람은 열여덟 살이 되면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때까지는 모두 대명사로 불러야 해.” (317p)   

하지만 ‘고골리’에서 ‘니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출생에 얽힌 일화들, 문화적 배경들, 출신 성분은 고스란히 남는다.

사실상 이름이란 한 개인을 임의적, 편의적으로 드러내는 표식일 뿐이며,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한 인간의 개성이나 인격, 성격 등 중요한 부분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더더구나,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지을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이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마치 거기에 운명을 주관하는 주술성이 깃들여 있는 것처럼 간주한다.

대체 왜, 우리들은 왜 이토록 이름에 연연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소설의 제목대로 ‘이름 뒤에 숨은 사랑’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이름에는 무수한 시행착오와 고민, 애정과 노력이 담겨 있다. (그것이 비록 착오의 결과일지라도) 그러기에 마음에 안 드는 이름일지라도 선뜻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고골리’라는 이름 또한 괜히 지어진 이름이 아니었다. ‘고골리’가 자신의 이름에 얽힌 사연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래도 과연 그는 이름을 바꿨을까? 

이름과 정체성의 관계를 뛰어난 솜씨로 풀어낸 작가 줌파 라히리, 기억할 만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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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13: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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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30 1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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