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구판절판


"돌아와 보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는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서 웃는 듯 마는 듯하게 내게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말야. 벌이나 파리가 한곳에 앉아 있다가 무엇에 놀라면 즉시 날아가지만 조그맣게 한바퀴 돌고 나서는 아까 그 자리로 되돌아와 내려앉는 것을 보고 참 우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었지. 그런데 뜻밖에 지금 나 자신도 기껏 조그맣게 한바퀴 돌았을 뿐 제자리로 날아 돌아온 것이야. 게다가 뜻밖에 자네도 돌아왔군. 자네는 좀 더 멀리 날아갈 수 없었나?"
"글쎄, 아마 나 역시 조그맣게 한바퀴 돈 것에 불과할걸." 나도 웃는 듯 마는 듯하게 말했다. "그런데 자넨 무슨 일로 날아 돌아온 건가?"
"역시 시시한 일 때문이지 뭐." 그는 단숨에 술잔을 비워버리고 담배를 몇 모금 빨고서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시시해.... 하지만 우리 이야기해 보세."
- 단편 <술집에서> 중에서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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