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에서 온 소녀 - 잃어버린 왕국
이미희 지음 / 하루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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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서 온 소녀》




먼 과거 전쟁이 일상이던 시기엔 한 나라의 승전은 한 나라의 패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승리가 영원하지도 않았다. 그 승전국은 훗날 또 다른 나라로 인해 패망 국이 되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승리의 영광과 그 결과만을 기억할 뿐 한 나라와 문화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 따위는 관심이 없다. 아마도 그것은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쓰이기 때문이리라. 한 때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나라들은 지금 모두 사라지고 그네들이 일구고 가꾸고 살고 사랑하였던 그 대지위에 새로운 문명과 국가가 세워지고 또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가야에서 온 소녀》는 가야연방의 멸망을 담은 소설이며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모티프가 된 인물은 2007년 경남 창녕군 송현동 가야 고분군 15호에서 발굴된 인골인데, 석실 중앙의 무덤 주인과 나란히 묻힌 세 사람과 함께 비교적 뼈대를 유지한 채 발견되었다. 천 오백년을 어두운 무덤 속에서 견뎌온 열여섯 살 소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분석한 결과 열예닐곱 살 정도의 소녀로 추정되며 송현동 고분에서 나왔다고 해서 '송현' 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한다.




작가는 이 소녀와 가야의 마지막 운명에 상상력을 더하여 주인공 소녀 '송이', 송이가 살았던 비사벌 국, 신라에 555년 병합되기 직전 그들의 역사를 써 남기려고 했던 태자였다가 마지막 왕이 된 남자, 태자의 정혼녀였다가 운명의 소용돌이로 신녀가 된 송이의 이모, 그녀를 짝사랑하다 비사벌을 배신하고 신라의 관리가 된 제사장을 만들어냈다. 또한 가야의 왕족 출신이면서 신라 장수로 살아야 했던 실존인물 김무력(김유신의 할아버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가야의 마지막을 슬프게 장식한다.


백성들에게는 나라가 바뀌는 것이 어떠했을까. 그냥 배불리 먹고만 살면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까. 왕족이나 고위층들은 나라가 바뀌어도 부나 위치가 유지되었겠지만 백성들은 더 가혹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 소설엔 나라를 위해 끝까지 투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세가 기우는 것을 간파하고 먼저 나라를 져버리는 사람도 있고 저무는 역사를 그대로 바라보며 쓸쓸히 죽어간 사람도 있다.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가야에 대한 역사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 소설을 통해 가야를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인골을 발견하고 복원하고 거기에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더해 한 사람의 일생과 한 나라의 황혼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한 작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많지 않은 분량, 흥미로운 이야기, 매력적인 등장인물, 맛깔난 문장으로 금새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쉽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 가을에 읽기 참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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