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 바다로 간 달팽이 10
장정옥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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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나는 개인적으로 조선사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로 선조, 광해군, 인조까지 이어지는 시기와 정조 대왕이 승하하신 후, 그리고 일제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었던 때를 꼽는다. 관리라는 자들에게 민생보다는 자신의 당파의 이익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나라의 환란까지도 안중에 없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겨우 어진 왕이 서 개혁정책을 펴 놓아도 그 후 정권이 역시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익 때문에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온 산천을 피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왕은 절대자이기보단 자신들의 당파에서 세운 사대부들의 대표 격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리저리 휘둘리고 제대로 된 정책 또한 펼치지 못했다. 선조는 아예 나라에 전쟁에 터지자 스스로 천조라 여기던 명나라로 가 살기만을 바라기 까지 했으니.


이 소설《비단길》은 정조 대왕이 승하하신 후 신유년에 일어났던 천주교 박해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대왕대비 김씨를 주축으로 하여 다시 정권을 잡은 벽파는 남인 시파들을 몰아내기 위해 '천주교'를 재물로 삼았다. 이를 재물로 남인의 중심인물들을 대부분 처단했으며 고을마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잡혀온 사람들은 모진 고문을 통해 아무개의 이름이라도 토설하게 만들어 또 잡아들였으며, '5가 작통법'을 시행해 서로서로를 의심하고 고발하게 만들었다. 이러니 빌린 돈을 갚지 않기 위해, 섭섭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재산을 갈취하기 위한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거짓 고발 또한 끊임없이 이어졌다.


소설은 이런 이야기를 신유년 순교자 선암 정약종과 이웃에 살던 수리의 가족과 엮어서 보여준다. 수리의 아버지 여문휘는 보부상으로 비단길로 장사를 떠나던 길에 노름할 돈을 빌려달라던 동료의 청을 거절하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친구의 고발로 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던 차에 천주교 신자인 친구의 이름을 말하고 만다. 고발로 목숨을 건지긴 했으나 결국 이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비단길로 떠나버린다. 그의 아들 수리와 할머니 어머니는 그런 여문휘를 기다리며 누에를 치고, 비단을 만들며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이웃에 선암 정약종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되는데 수리는 훌륭한 인품과 깊은 학식을 지닌 정약종의 제자가 되어 스승이 순교하던 그날까지 그의 곁에서 가르침을 받고, 그들의 가족과 식솔들과의 이야기도 큰 축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엔 정약종을 비롯한 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 그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그 시대 사람들이 하였을 고민들과 민초들의 한, 실상을 살펴볼 수 있다. 가렴주구에 빠진 관리자들, 민초들의 고혈을 빼먹는 양반들, 천주학을 학문으로 종내에는 신앙으로 받아들인 선 지식인들의 고민과 이야기들이 한 점 한 점 아름답게 수놓아 진다. 하늘아래 모든 이들은 똑같이 소중하고 평등하다는 천주의 말씀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상상하기에도 버겁다. 그들이 갖가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절대 놓을 수 없었던 믿음과 신의를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특히 정약용에 비해 역사적으로 관심밖에 있었던 선암 정약종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그렇게 지켜온 믿음과 학문과 진리였건만 지금의 천주교와 개신교를 비롯한 천주 신앙의 모습은 어쩜 이렇게 변질되었는지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진 않았으나 지금 교회의 모습은 초기의 신실함과 순교자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지 않은가. 오늘도 전교를 이유로 인도에까지 찾아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사찰에서 '땅 밟기'를 하는 신도들의 모습이 기사화 되어 비난을 받는 것을 보았다. 목숨을 내 놓고서라도 자신의 믿음과 동지들을 등지지 않았던, 자신들을 죽이려한 악마 같은 그들도 사랑으로 용서하고자 하였던 그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그런 아름답고도 슬픈 소설이다. 많은 분들에게 읽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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