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만우절 나남창작선 113
양선희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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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만우절

 

 

 

 

 

 

 

 

'언니 나는 오늘이 만우절이었으면 좋겠어. 아니 매일 매일이 만우절이었으면 좋겠어.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만우절의 거짓말이 되게 말이야.'

 

 

 

살아오면서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말'로 인한 고통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의도를 가진 악의적인 거짓말로, 누군가의 아무 의미 없이 내뱉었던 말들이 큰 눈덩이로 불어나서 혹은 사소한 오해들로 우리는, 인간만이 가졌다는 재능인 '말' 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서두에 쓴 주인공 '민은아'의 말이 이 소설 <카페 만우절>의 주제를 한 줄로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일 년의 단 하루, 거짓을 진실처럼 말할 수 있는 만우절을 매일 매일 살아가고 싶을 만큼 말로인한 상처가 크다.

 

 

그녀의 엄마 '윤세린'은 천재시인이었으나 남편과 딸을 버리고 불현듯 프랑스로 떠나 센 강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 '민은아'는 엄마의 재능을 이어받아 연극배우이자 천재 희극작가로 살아가는데 그녀에겐 늘 '버지니아 울프 윤세린의 딸' 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명한 로펌의 대표인 변호사로 그녀를 딸로서 따뜻하게 품어준 적이 없는 매정한 아버지이며, 그런 그녀에게는 늘 남성에 대한 추문이 떠돌고,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늘 그녀에게 집착하고, 심지어 남자들의 어머니는 늘 그녀에게 비이성적일 정도로 가혹했다.

 

 

그러던 그녀가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뜨게 되자 언론사와 기자들은 그녀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게 되고 그녀의 과거와 불행한 가족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앞 다투어 취재를 하려한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흥미 거리가 아닌 '진실'을 파헤치는 '한승애' 기자. 그녀는 주인공을 취재원으로써 10년간 봐왔고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로 주인공을 도와주게 되며 그녀의 남편, 아버지, 친구, 극단 관계자들을 오가며 떠도는 말과 소문사이에서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알려진 사실들 사이에 절묘하게 포장된 진실, 게다가 실제 주인공들도 서로 모르고 있는 진실들이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된다.

 

 

 

 

이 소설은 크게 세 줄기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전개 되는데, 하나는 앞서 말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둔 가족들의 관계와 죽음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주인공의 삶에 대해 사람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거짓이 진실처럼 부풀려지고 한 낱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과정 그리고 이런 소문들을 근거로, 거룩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상대편의 사람에게는 이기적이고도 파괴적인 모습으로 돌변할 수 있는 '모성애'에 관한 하나가 그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으며, 많은 사실들 중 어느 하나를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 사람들 사이로 더 크게 공명시켜 '진실'로 포장한다. 변하지 않는 사실을 두고도 각자의 상황과 기분, 잣대로 이를 서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형시켜 어느 순간 '진실'로 바꾸는 그 과정을 즐기며, 변하지 않는 진실인 냥 소비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슬픈 현실은 그 일의 당사자들끼리도 아무상관 없는 사람들의 '소문'만을 진실로 받아들일 뿐 서로 소통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조차도 자신의 엄마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프랑스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만 진실로 받아들일 뿐 사람들이 임의로 씌워놓은 원죄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나려 하지 못하고, '말'들로 인해 학대당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기자 한승애의 시각으로 이런 주인공과 그녀의 가족, 지인들, 자칭 친구들을 오가며 '말' 이 어떻게 사람들을 구속시키고, 상처를 주며, 부풀려지고 진실로 변형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며 그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한다는 것도,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 따위는 안중에는 없다는 것도.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통찰력에 한번 놀랐고,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도록 마치 추리 소설의 그것과도 같은 긴장감을 주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주인공 가족의 비극은 가만 들여다보면 섬짓할 정도로 두려운 것이다. 군중의 시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던지는 돌팔매는 한 사람을 넘어서 대를 이어 한 가족을 비극의 수렁에 빠지게도 할 수 있다. 그 폭력과 잔인성에 자유로울 수 있는 이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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