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임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박제가, 욕망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

 

 

욕망을 제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욕망하면 떠오르는 뜨겁고 끈적한 이미지의 그런 것일까. 책을 읽기 전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러면 박제가는 어떤 인물인지. 순간 연암 박지원이 떠오르고, 북학의 였던가 하는 책도 떠오르고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또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박제가는 이처럼 내게 그리 의미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역사책 한 구절 외워야 하는 인물과 저서와 무슨 무슨 파벌의 일원일 뿐. 이 책은 박제가라는 인물이 살아가던 조선 사회와 그 시대상, 그리고 비운의 비뚤어진 천재 박제가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분석의 태도방법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여행이나 방송, 서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외국의 모습이나 과거의 시대상 혹은 내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른 오지의 문화를 만날 때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 외국에 여행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역시 음식은 한식이 제일이라는 얘기들을 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먼저 할까? 역시 우리 것이 최고이고 다른 문화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

 

박제가는 내가 알던 조선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이질감까지 느끼게 하는 조선의 모습과 앞선 문물을 가진 청나라를 비교하면서 조선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선의 뜨거워 절절 끓는 온돌보다 전체적으로 미적지근한 청의 온돌이 좋다고 하던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소 조차도 잘 끌지 못하는 마차, 벽돌이 아닌 여러 크기의 무거운 바위로 만든 성벽, 두껍고 질겨서 글씨를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한지, 만들어도 파는 경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아 발전이 되지 않는 도자기 등 우리가 세계적으로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유산들까지 비판을 하고 있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가 봐도 맹목적으로 외세를 추종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나도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가슴에서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참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의문들은 일정부분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저자는 읽는 이의 이런 심리적 변화를 예측하여 책의 목차를 정했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으로 인해 책장을 더 넘길 수 없었을 테니까. 첫장에는 박제가의 출생부터 청년기까지의 일화들이 나온다. 그의 부모와 가문, 그가 태어난 배경, 그리고 그가 서얼로 살아가며 느꼈을 답답함과 그들이 그렇게 차별 받게 된 이유를 밝힌다. 왕권이 혼인을 통해 세력을 넓혀가는 권문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일부일처의 규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렇게 규제가 차별을 만들고 그 차별이 또 다른 억압을 부르는 그런 상황은 나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억압된 상황, 반골기질이 분명한 천재 박제가는 순리와 사회가 원하는 길을 걷기를 거부했고, 타협을 거부하고, 차근차근 조근조근 설명하는 돌아가는 길을 거부한 사람이다. 주장을 할 때도 앞뒤 자르고 본론부터 결론만 말을 하니 어떤 사람이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 주었을까. 지금 들어도 과격한 주장들이 과연 그 시대에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켰을지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욕망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살아가는 데는 자기만의 욕망이 있다. 부자가 된다거나, 인정을 받는 다거나, 유명해 진다거나, 좀더 편리하게 혹은 좀더 멋지게 그런 자신들만의 욕망이 삶의 의욕을 만들고 열심히 살게 한다. 그러나 조선은 민초들에게 그런 욕망을 허용한 사회가 아니었다. 상위 1%도 아닌 0.5% 의 권문세족들, 그들의 욕구를 위해 모든 국민들은 우민화시킨다. ‘고비용 저효율박제가는 바로 조선의 그런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좀더 편하게 이동하기 위해 말을 타도 말을 잡고 걷는 종과 함께 걷는 다거나, 앞서 말한 너무 크고 무거워서 소조차도 지치게 말하는 수레, 농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지도 농업을 위해 기술을 연구하게 하지도 않는 이상한 농본주의 사회, 99% 이상의 국민들은 어떤 욕망도 거세 당한 채 골고루 가난하게 하루종이 일해도 배고픔 조차도 면하게 하지 못하는 저효율의 사회, 폐쇄된 사회를 고수하도록 쇠뇌 시키는 사회였던 것이다.

 

상업과 공업이 흥하면 국민들은 돈을 가지게 되고, 경제가 흥하면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게 될 터였다. 남들보다 더, , 사람들은 좀더 좋은 것, 좀더 편한 것, 예술과 학문을 가지게 될 것이었기에 상위 1%의 권문들은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오로지 시키는 데로 먹고 사는 1차적인 문제에만 매달리게 하기 위해 조선은 오히려 과거의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더 낙후된 사회, 더 폐쇄적인 나라를 만들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상, 내가 알던 그 조선이 아닌 다른 조선을 만나고 나니 나 또한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다다른다. 다른 문화, 다른 사실들을 만날 때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저 머리 속에 변호사를 불러내야 할까. 내 생각을 바꿔야 할까, 이 인지부조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욕망내가 살아가는 에너지. 나를 발전하게 하는 에너지. 드라마에서 보던, 답답하지만 생동감 넘치던 조선이라는 나라가 순간 무채색으로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박제가. 그는 그 답답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귀양가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어떤 마음으로 버틴 것일까. 비운의 천재. 그의 삶이 그의 거친 언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비단 이기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이것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대의 모습이 과연 이 발달한 한국 사회, 글로벌한 한국사회에서 사라졌다고 과연 자신있게말 할 수 있을까? 박제가의 외침은 아직도 유효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뒤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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