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단맛 매드 픽션 클럽
파울루스 호흐가터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인생의 단맛

 

 

 

오스트리아의 작은 지방 도시에서 펼쳐지는 살인 이야기. 글쎄 뭐랄까. 좋은 평이 많아서, 2007독일추리소설상에 제1회 유럽연합문학상 최고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기대를 많이 하고 읽은 책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는 도중, 다 읽은 지금까지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글의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신선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작은 도시의 춥고 음산한 이미지, 등장인물들의 자세하다 못해 지루한 묘사, 의미 없는 대화의 나열, 딱히 주인공이 없는 화자들의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이 번갈아 나타나는 구성 등 이렇게 모아 놓고 보면 음산하고, 오싹하고 무채색 톤의 공포영화 한편을 소설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구성이 소설의 몰입도를 방해하지 않았나 한다. 딱히 주인공은 없지만 정신과 의사인 호른이 자주 등장하고, 그가 병원이나 방문해서 만나는 그 도시의 시민인 정신병자, 무기력하고 우울한 사람들, 혹은 범죄자들 중에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몰아가고 있으니까.  

 

 

크리스마스 3일 후, 손녀와 화내지마게임을 하던 할아버지 제바스티안 발페르트가 잠시 밖으로 나간 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궁금해 따라나가 본 손녀 카타리나는 집 앞 도로에서 머리가 으깨져 살해되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그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그 아이가 살인의 비밀을 쥐고 있는 듯 아리송하게 표현하지만 거기에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 부분에는 결국 그 아이의 말 한마디가 살인자를 지목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은 맨 처음부터 지루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화내지마 게임 하는 모습이 장황하게 서술된다. 전지적 시점으로 묘사되는 그 부분은 실은 사건에 큰 의미가 없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손녀가 죽은 할아버지를 목격한 후 다음 챕터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다른 서술자들이 교차해서 나타난다. 정신과 의사 라파엘 호른과 그 부인, 자동차 상인의 아들인 사이코페스 범죄자 아들 다니엘과 형의 지령을 받아 도시의 동물들을 살해하는 그 동생, 사건을 조사하는 코바치 형사, 모로코 출신의 의처증이 있는 식당사장 레프터, 수도자이며 정서가 불안한 달리기 중독자 요제프 바우어,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약물중독이 된 베네딕트라이, 살해당한 할아버지의 딸 루이제 마이발트와 살인자로 의심받는 된 사위 에른스트 마이발트, 자기 딸을 악마라고 생각하는 카롤리네 베버, 자신의 딸의 다리를 의도적으로 부러뜨리고 사고라고 거짓말 하는 악마라 할 수 밖에 없는 노르베르트 슈미딩거 등의 이야기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거나, 정신과 의사인 호른의 입을 통해 나타난다.

 

 

아마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 들 중 누군가가 범인인지 추리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이 도시 사람들은 정말 하나도 정상이 없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사이코페스 혹은 약물중독이다. 어른인 슈미딩거는 5살인 딸을 마당의 빨래 줄 걸이 봉에 내리쳐 부러뜨리고도 뻔뻔하게 뺑소니 사고라고 하고, 설사 자신이 그랬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어쩌겠냐는 이유를 대며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것을 목격한 이웃 사람도 그것을 신고하기는커녕 불이익이 닥칠까 거짓말을 한다. 누구라도 그 자를 보면 그 다음은 다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겠군하는 생각이 들 것인데 말이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모순덩어리이며, 정신병자들이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한심하며, 정말 그 누구가 살인자라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을 듯한 사람들이다. 도시의 분위기는 음산하고 어둡고, 으스스하며 차갑다. 그런 어른들 밑에 있는 아이들도 정상이면 오히려 이상하다. 끝까지 범인으로 몰아가는 아이들은 사이코페스에 형은 동생에게 살인을 지시하고, 동생은 그런 형의 명령에 따라 토끼, 오리, 개까지 살해를 해댄다.

 

 

소설의 끝으로 가면서도 범인은 오리무중에 등장인물들 모두가 살인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마리는 소설의 2~3 페이지를 앞두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목격자인 아이의 입에서 나온다. 말문이 막힌 그 손녀아이가 뱉은 단 한마디. 그러나 그것도 깔끔하게 누가 범인이요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범죄에 사용된 그 트랙터를 누가 운전했는지 확실하게 밝혀주지는 않았으니까.

 

 

궁금하다. 과연 이 소설이 어떤 재미를 주는지. 장황한 묘사, 의미 없는 대사의 나열, 깔끔하지 못한 서술들. 어쩌면 이것이 번역의 문제는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영어식 이름에 익숙한 때문인지, 묘사보다는 빠른 전개와 선명한 선과 악의 대비, 충격적인 사건과 반전이 특징인 영미권 소설과 영화들에 익숙한 때문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책을 덮은 지금도 뭔가 깔끔하지 못한 뒤끝에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 누구나 아프고 연약해 지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범죄와 그 범죄를 대하는 태도는 무엇 때문에 잉태되고 발현되는 것일까.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도시가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저자가 말하고자 한 인생의 단맛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 은유 속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인생의 단맛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지르게 마련이지.”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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