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학교에서 있었던 한홍구 선생님의 강연. 2006년에 한겨레 특강으로 뵙고 2년만이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학교에서 뵙고 거리에서도 몇 번 마주쳤었고. 다시 2년이 지나, 조만간 학교에 오신다고 하니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지난 글을 정리해본다. 그 동안 있었던 다른 강연들도 좀 정리를 해야 될텐데, 게을러서 큰일이다.

 과거가 단순히 옛날에 일어난 일일까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강연. 해방 당시에는 친일파가 당대의 일이었다고 하며 청산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역사 - 친일파 관련, 한국전쟁 관련,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관련 - 를 잠깐 언급했지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은 친일파 청산과 관계가 있지만 제대로 풀려면 가까운 과거, 즉 지금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가야 한다더군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친일파가 득세하는 나라에서 정직하게,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라고 할 수 있겠냐는 거죠. 그래서 BBK 사건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로 귀결된다구요. 사실 5년 전 선거에서 BBK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당장 그 후보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어야 겠지요. 그게 아니더라도 당선은 힘들지 않았을까 예측해봅니다. 이회창이 떨어진 것엔 대쪽 이미지인 그에게도 아들의 병역 문제라는 비리가 있었다는 것이 일정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르지요. 물론 전과에 대해 제대로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선 무효 소송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지만, 어쨌든 국민은 2007년 12월 19일 당시 명바기(본인이 좋아하는 대로 영어식입니다. 거기에 '읍니다'보다 오랜 연원을 가진 연철 표기를 하니 완벽하군요'ㅁ')를 선택했습니다. 경제를 살릴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말입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나쁨으로 대의를 판단하려는 이와 같은 현상의 밑에는 역사 문제가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청산이 엄격하게,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라는,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의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방법에는 유보한다는 입장도 역시 밝혔습니다. 하긴, 지금의 제가 생각해봐도 해방 당시에 제대로 친일파 - 민족 반역자 청산이 이루어졌다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실린 사람 모두가 벌을 받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정말로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은 강연에서도 언급했듯 민족투사를 밀고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나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이 격화되면서 일제 시대 고등경찰들은 '빨갱이를 때려잡는 반공 투사'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30년대 이후 국외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세력들 중엔 사회주의 계열 역시 많지만 이들이 오히려 친일파에 의해 청산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지요. 한홍구 교수님은 이를 두고 미국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8·15 때나 삼일절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자칭 우파'들이 미국에 대해 뼛속까지 고마워하는 이유는 여기 있는 게 아니겠냐더군요. 그러면서 '우파를 찾다 보니 친일파를 등용했다'라는 어이없는 말을 간단하게 논파했습니다. 왜 미국이 친일파와 손을 잡았느냐, 그건 백범 선생이 진짜 '우파'이기 때문이다, 라는 이유였지요. 보통은 민족을 내세우는 것이 우파이며 이것은 강점인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하시더군요. 하긴 그렇게 보자면 정말 '자칭 우파'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어지지요. 요 근래 촛불시위를 두고도 말들이 많던데, 특히 중앙일보에 광고낸 쪽은 좀 보기 그렇더군요. 좌빨 선동이라는 케케묵은 논리에다가 더해서 애국은 지갑에서 나오는 거라니(…)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해방 정국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48년 5·10 선거는 단독정부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파들 중에서도 악질 친일파는 처단해야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았을 것 - 아마 당시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면 친일파 청산에 99% 찬성하지 않았겠냐고 하셨어요. 친일을 한 사람들도 자신들이 벌을 받아야겠지만 '죽이지는 말아달라', '좀 너그럽게 봐줬으면…'이라는 심정이었을 거라면서요. 그래서 좌익과 한독당마저 보이코트를 한 우익 제헌국회였지만 그 속에서 반민특위가 조직될 수 있었다고요. 그렇지만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이 일어나고, 반민특위가 해산된 데 이어 보름만에 백범 선생이 암살당한 역사. 이를 놓고 친일파가 친일파 청산을 막기 위해 벌인, 하나의 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한홍구 교수님 역시 언급하셨듯이 안두희의 말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나요.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한국전쟁으로 슬그머니 풀려나 승진까지 하고, 예편 이후에는 군납업자가 되어 강원도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기도 했다죠. 이쯤되면 너무하다는 생각 또한 듭니다. 혈서까지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갔던, 자칭 '불행한' 정치군인은 자식까지 정계에 뛰어들지만 독립군의 후손들은 빈곤의 대물림으로, 혹은 국적법 때문에 아예 대한민국 국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타국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래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되는 거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되지요.

 한국전쟁 중의 보도연맹 사건과 민간인 학살 또한 언급했습니다. 이미 일제 말기에 실행될 계획이 있었던 것 - 이러니까 새삼 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미루어진 부마 항쟁 진압이 80년 광주로 시공간만 바꿔서 그대로 행해진 게 떠올랐지요. 나중에 한홍구 교수님이 언급하시지만요 - 이 이 시기에 이루어진 거라구요. 진짜 좌익은 월북하거나 지리산으로 들어갔지만 살기 위해 이리저리 눈치보다 죽어간 사람들은… 게다가 평화 통일을 주장하다가 죽산 선생이 사형당한 이후 멸균실 수준의 반공이 유지됐다고 하셨지요. 세칭 '진보당 사건' 이후로는 감히 진보라는 말을 쓰지도 못하고 혁신·재야 세력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면서 말예요. 그러면서 책에서도 익히 봤던 분들의 예가 줄줄 이어졌습니다. 공산주의가 싫어서 월남한 기독교 사상가 함석헌님, 친미단체에서 활동했던 장준하님, 반공포로로 남한에 남는 것을 선택한 김수영님,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주장하고 미군정 통역이었던 문익환님, 국군장교 출신 리영희님, 극우학생단체 행동대장이었던 계훈제님… 우리가 이른바 '진보적인' 인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력이라면서, 양심적인 게 진보적이었던 세상의 이야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강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주위의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돕다보니 어느새 좌파가 되어있었다는, 예전에 만난 어떤 분의 말씀 또한 따라서 떠올랐습니다.

 작년 12월 19일, 예측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결과가 나왔을 때는 새삼 좌절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긴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인수위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정부가 출범하며 5년을 안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셨을 때 다 같이 웃었던 사람들. 아마 한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울의 촛불시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가 '고시 철폐 협상 무효'와 '이명박은 물러가라'지요. "촛불시위의 배후는 누구냐"고 묻는 대통령에게 'MB, 네가 내 배후'라던가 '촛불은 내가 샀어요'라고 응수하는 시민들, 한나라당과 서울지방 경찰청 홈피 해킹으로 발랄하게 대응하는 시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죠, 정말:)

 그리고 80년 이후 자살골만 3번 넣었던, '새 판이 한 번도 짜여진 적 없는 역사'에 관한 언급이 이어졌습니다. 87년 6월 6·29선언을 이끌어냈지만 결국 노태우가 당선되고 말았죠. 당대에는 '5공 청산'을 얘기했지만 3당 합당 등으로 결국 이루어지지는 못했구요. 그러다 97년 대선에서는 DJ가 당선됩니다. 이성계 죽고 처음으로 변방인이 중앙 권력을 잡은 거라고 얘기하시더군요. 다들 아시다시피 당시는 IMF 관리 체제에 있었고 이것은 구조조정의 절대적인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IMF에서 원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중 관료개혁이나 재벌개혁 등이 밀리고 대여섯번째 순위에 있던 노동시장 유연화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지요. 다시금 개혁의 대상이 개혁 주체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뭐, 그래도 DJ가 당선될 때는 외환위기+이인제가 가지고 간 500만표+역 지역주의(DJP 연합)+김현철 스캔들 등등의 이유로 40만표 차가 나왔고 수구세력은 5년만 참자, 라고 했는데 02년 대선은 다들 알다시피 노통이 당선됐죠. 때문에 탄핵 - 탄핵안을 제출한 한 사람은 친일법안을 누더기로 만든 5공의 마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유신헌법을 기초했으며 초원복집 사건의 책임자라지요 - 이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오히려 총선에서 열우당 단독 과반수+민노당 10석이라는 역풍을 맞고 맙니다. 하지만 이 때에도 국보법은 지겹게 살아남았고 오히려 노통은 '대연정'을 운운하며 국민을 저버립니다. 통합민주당 몰락에는 이것이 작용했다고 하셨는데, 선거 전략의 부재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일단 대표가 손학규라는 것부터가 좀 그렇지요. 한나라당에 자유선진당, 친박(무소속)연대, 통합민주당 모두 전현직 한나라당 당원이 대표라는 게, 사실 그 놈이 그 놈으로 보였단 말이죠. 게다가 명확한 미래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네거티브 전략으로만 일관하는 것 - 특히 4월, 청주에 다녀오면서 본 '견제'라는 선거 전략 간판은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 으로 나갔다니 할 말이 없더군요.

 원래 예정 시간은 1시간 정도였지만,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이번 강연의 마무리는 역시 어제와 오늘이었습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에서 87년 6월 항쟁까지의 사건은 영웅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하셨지요. 이번 촛불시위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구요. "왜 내 운명을 네 멋대로 결정해?"라며 거리로 나선 촛불 소녀들. 그러면서 역사에서 기회가 왔을 때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를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당신이 힘을 더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쏟아진 우레와 같은 박수.

 이후로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첫번째는 현재의 촛불시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거였는데요. 비장함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고 있는 시위 문화를 얘기하며 지도부가 없다보니 저녁에도 해산을 못하는 처지라고 하셨습니다. 적법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임기가 한참 남은 정부. 그러나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을 못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서는 것이라며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 역시 아직 생각을 잘 잡지 못하겠군요. 지도부가 있는 것이 힘의 결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반면 주도권 다툼과 지도부의 중심 노선과 맞지 않는 사람들의 이탈을 불러올 것도 뻔히 보이잖아요. 내일은 아마 못 올라갈 듯한데, 최대 인원이 모일 거라고 생각되는 내일부터 주말의 분위기를 보고 좀 더 고민해야겠습니다.

 두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은 직접 실습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한테 역대 대통령 중 누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자 '경제 대통령' 박정희가 1위, '의리-_- 대통령' 전두환이 2위를 차지했답니다. - 하긴, 얼마 전 선배랑 밥을 먹을 때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실습에서 애들이 하도 명바기 욕을 하기에 그럼 작년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았겠냐고 물어봤대요. 압도적인 다수가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합디다. 애들한테 있는 이미지가 '부시의 카트를 미는 MB, 눈물 흘리는 근혜공주, 봉화마을의 노간지'래요 - 때문에 교과서를 써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길러줄 생각은 없냐고 물어봤지요. 그러자 구속받지 않는 형식이라서 교과서 스타일의 글은 아니라고 답하셨습니다. 진보·보수가 역사의식을 주입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금 촛불시위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걸 왜 먹으라고 하냐", 즉 자기 이익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라구요. 따라서 교사는 지식 전달에 더해서 '관점의 수립'이라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통일의 경우 지식과 관점의 문제가 다를 수 있는데 당위 차원이 아니라 통일과 군대 문제를 결부시키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이익'만'을 생각하면 안 되는 문제니까 '나'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걸로 끝을 맺었습니다.

 마치면서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 서명을 받았습니다. 무려 집에서 실어온 책 - <대한민국사>랑 <현대사 다시 읽기>가 전부 집에 있더라구요 - 으로 말이죠. 그러면서 예전에 연대 위당관에서 뵈었던 얘기를 잠깐 꺼내자 무슨 과냐, 몇 학년이냐 물어보시고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선생님 되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그러고는- 지난 5월 31일 시청 앞에서 다시 뵈었습니다. 왠지 괜히 반갑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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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 이광수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9
이광수 지음, 김철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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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무정>. 다들 제목은 많이 들었을테지만, 대부분의 명작이 그렇듯 정작 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도 그랬다. 이광수라는 이름에 주어진 무게와, 그가 남긴 공으로 다 가려지지 않는 그의 행적 때문에. 그러다가 문지의 한국현대문학 전집을 한 권씩 읽어나가며 - 정확하게는 시대순/작가별로 찾아 읽으며. 다른 전집들이 보통 연도순으로 나오는 것에 비해 문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순서를 취하고 있다. 지난 북페에서 출판사 분께 물어보니 저작권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 이 작품에도 손을 뻗게 되었다. 읽고 난 한 줄 감상은 '재밌더라.'
 읽는 도중 다른 생각을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기대하고 있지 않아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형식이 선형과 영채를 두고 혼자서 고민하는 건 정말 코미디였달까. 무슨 인간이 그렇게 우유부단해! 라면서도 갈등하는 모습 자체가 재밌어서 결말을 알면서도 끝까지 잡고 갈 수 있게 만드는. 하긴, 사실 전대의 소설과 다른, <무정>의 근대성도 - 다시 말하자면 당대의 컬처 쇼크이자 지금까지도 전해지게 하는 매력이랄까 - 거기서 드러난다. 고소설이나 신소설은 갈등이 외부로부터 오는 반면, <무정>에서는 내부에서 갈등하는 인물이 나타나니 말이다. 물론 '고뇌하는 인물'은 아직 완벽하게 자리잡지는 못한지라, 후반부에 가면 계몽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형식이 나타나서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하지만.

 형식은 잠깐 추연하다가(슬퍼하다가) 다시 그 불을 본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오직 불 하나가 반짝반짝하는 것과, 세상이 다 잠을 깊이 들었을 때에 그 불 밑에 혼자 깨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형식은 그것이 마치 자기의 신세인 듯하였다.

 그가 만원된 차를 타고 눈앞에 들썩들썩하는 사람을 볼 때에 나는 저들이 모르는 말을 많이 알고, 모르는 사상을 많이 가졌다 하고 생각하고는 일종 자랑의 기쁨을 깨닫는 동시에 '언제나 저들은 나만큼이나마 가르치는가' 하는 선각자의 책임을 깨닫고 또 이천 만이나 되는 사람 중에 내 말을 알아듣고 내 뜻을 이해하는 자가 몇 사람이 없구나 하는 선각자의 적막과 비애를 깨닫는다.


 천지가 온통 캄캄한 중에 반짝거리는 불 하나, 선각자의 책임과 적막과 비애 같은 표현들을 보면 형식은 근대성으로 무장한 독불장군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보면 혼자서 세상의 온갖 고뇌를 다 지고 가는 양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 개인한테는 꽤나 심각한 문제였겠지. 그렇지만 교육으로 저들에게 문명을 주겠다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불분명한데 어떻게 웃음이 안 나올 수 있을까.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겠다. 지식을 주어야 하겠다. 그리하여서 생활의 근거를 완전하게 하여 주어야 하겠다.
…(중략)…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이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아마 <무정>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지 않을까. - 병욱의 이름이 나왔기에 잠깐 덧붙인다. 개인적으로 기차에서 형식과 선형, 영채와 병욱이 만나는 부분에서 '짝은 맞겠네.'라고 생각했는데 병욱이 여자였다는 점에서 좀 충격이었다 - 형식은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라고 말하면서도 다시 '저들'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그만큼 확실하게 다른 사람과 자기를 구분짓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앞에서도 지적했던 선각자 의식, 그리고 교육과 실행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문명개화론을 읽을 수 있겠다. 또 주워들은 풍월을 갖다 붙여 보자면, 형식은 저 '타자 만들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나'를 설명할 때도 무수한 관계의 중첩으로 표현할 뿐이요, 사실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타자를 설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교육가가 되렵니다. 그리고 전문으로는 생물학을 연구할랍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 중에는 생물학의 뜻을 아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형식도 물론 생물학이란 참뜻은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연과학을 중히 여기는 사상과 생물학이 갖아 자기의 성미에 맞을 듯하여 그렇게 작정한 것이다. 생물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새문명을 건설하겠다고 자담하는 그네의 신세도 불쌍하고 그네를 믿는 시대도 불쌍하다.


 그렇다. 익히 알고 있듯 그네도, 그네를 믿는 시대의 신세도 불쌍하게 진행될 뿐. 이광수가 덧붙인 저 한 마디를 보면서 문득 김옥균을 떠올렸다. 갑신정변 때 김옥균은 34살이었고, 그를 따랐던 개화당은 2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 심지어 10대 후반의 소년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믿는 바에 따라 행했던 '그들의 혁명'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이후의 역사가 냉엄하게 밝히고 있다. 아마 이들은 더 오래 기다리는 법과 혼자 서는 법을 배웠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무정>은 다들 성공한 후일담을 덧붙인 뒤에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며 끝을 맺는다. 아마 이는 이광수의 세계 인식과도 연결되겠지만,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많은 논자들이 동의하는 바, 그의 삶과 관련하여 그의 작품에는 아버지를 부정하는 고아의식이 드러난다. 그래서 지나간 세상을 묻어둔 채 '웃음과 만세'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작품은 엄혹했다고 얘기되는 1917년에 발표되었지. 그리고 이후로 그는 변해갔고. 아니, 사실 변했다기보다 '문명개화'를 얘기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쉽사리 근대화되지 않는 조선에 절망했겠지만, 식민지 수탈체제가 아닌 민족 개조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는 게 아쉬울 뿐.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바로잡은 무정>을 보고 좀 더 얘기해 봐야겠다. (윽, 하지만 전공 서적은 왜 이리도 비싼 것이냐-_-)

덧. 근대소설의 효시로 <무정>을 꼽고 있지만, 생각 외로 '~더라' 투의 문체와 전지적인 작가 시점으로 인해 고소설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는 것 또한 <무정>이다. 특히 19세기 말~20세기 초 인기를 얻었던 구활자본 소설 <채봉감별곡>(소설 속에 나오는 가사의 제목을 따서 <추풍감별곡>이라고도 한다)과의 연관성이 논의되기도 한다.

다시 덧. 정출헌의 논문 '고전 서사문학에 나타난 아버지의 형상과 그 변주', 김윤식의 <그들의 문학과 생애, 임화>를 읽는다면 우리 문학사에 나타난 '아버지'라는 주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특히 근대 초기의 작가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는 앞 세대와의 단절의식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시 확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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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저자인 조혜란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종종 접했던 논문의 저자입니다.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고전소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논문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어나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 <옛 소설에 빠지다>를 쓰면서 저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팅커벨이 나타나 어두운 공간에 반짝이는 정채精彩를 더하듯, 박제된 시간의 전시품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고전소설을 오늘날의 삶의 공간으로 불러내고 싶다.' 아마 이 말은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고전문학'교육'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겠고요. 저자 역시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연결하고픈 욕구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책 자체가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수정·보완해서 엮은 것이기도 하고요. 부제가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인 것에서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요.

 책에는 모두 열 세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생규장전'이나 '박씨전', '호질'처럼 익숙한 작품과 '소설'(작년에 출간된 돌베개의 도서, <千년의 우리 소설 1-사랑의 죽음>에서는 '옥소선전'이라고 번역되어 있지요), '윤지경전', '강도몽유록'처럼 일반 독자들에게 낯설 수 있는 작품이 고루 섞여있고요. 짧지만 흥미있는 미리 읽기, 간략한 줄거리에 꼼꼼한 작품 해제, 깊이 보기(원문 일부와 번역문, 약간의 설명)와 넓게 읽기(함께 읽으면 좋은 작품들 소개)까지 있으니 구성 역시 탄탄합니다. 그야말로 두려움 없이 고전소설이라는 커다란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읽다보면 어느새 푹 잠겨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겠고요. 

 그렇지만 깊이 보기 부분에서는 약간 평이 갈릴 수 있겠습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너무 짧아서 감질날 수 있겠고, 고전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찾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굳이 한문 혹은 옛한글 원문까지 수록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죠. 아마 전공자의 욕심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별점주기라는 전통을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별 하나를 뺀 건 이 때문입니다. 대신 작품 수록부터 다른 건 다 마음에 들어요. 디자인도 깔끔하고, 특히 소설 주제별로 장을 구분하면서 책거리도(로 추정되는^^;)의 서로 미묘하게 다른 부분들을 싣고 있는 것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고요. 추천할만한 한 권의 입문서입니다. 

 덧. 자꾸 돌베개의 <千년의 우리 소설>과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일부 중복된다는 것 외에도 고전과 현재의 소통을 꿈꾸며 이름 있는 전공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해서 그런 생각이 드나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흥미를 끄는 발문부터 넓게 읽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소설에 대해 교과서처럼 체계적인 안내를 하고 있고, <千년의 우리 소설>은 원작 자체를 읽는데 중점을 두고 작품들의 해제는 권말에 한꺼번에-간략히 싣고 있습니다. 후자는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는 만큼 다루는 작품 수가 좀 많고요. 각자 특색이 뚜렷하니 필요에 따라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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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신간평가단 활동 안내
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9월에 새로 나온 소설들을 살펴보자니 역시 장르문학이 대세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의 끝무렵이라 그런지 추리소설들이 꽤 많이 보이네요.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요 녀석입니다. 

 책 소개를 보니 '12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고대의 지혜를 찾아나선 두 철학자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하네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이언 피어스의 <핑거포스트, 1663>처럼 과거의 한 시대를 재현하며 정교한 서사를 얽어나가는 작품들을 좋아하기에 이 책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관심있게 보는 세계문학전집에도 새로 나온 책들이 많습니다. 이번에는 러시아문학의 향연이네요. 휴대성이 좋은 열린책들과 독특한 작품들을 많이 선정하고 있는 을유문화사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한 권씩 골라보았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밤엔 역시 길고 묵직한 이야기와 함께 하는 게 매력적이지요. 좋은 소설이 모두 그렇듯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비교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겠구요.

                   

 우리 소설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어째 9월에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네요.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이나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은 아무래도 10월 출간인 만큼 이번에 추천하기는 조금 망설여져서요. 대신 다음 달에는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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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강요한 천국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지옥이 낫다.
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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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살아 움직이는 바다. 그 바다 위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사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잊지 못할 사람까지 수천 명이라는 말로는 모자랄 터. 그런데 왜 나는 40여 년 전 잠깐의 인연이었던 그를 잊지 못하는가. 아마도 인훈의 말처럼 그가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동안 그를 보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얘기하고 싶다. 결국 살아 움직이는 바다 속으로 내려간 그, 이명준을.
 그와 나는 타고르 호를 같이 탔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고르 호를 택했다는 것이 최대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의 나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한국의 현실에 정을 붙일 수 없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사바사바’가 통하는 세상답게 송환 절차에 끼어들어 인도행을 택했던 것이고. 하지만 그는 좀 달라보였다. 20대의 젊은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지친 표정.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새로운 땅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반씩 섞인,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로 넘치는 배에서 그는 유달리 눈에 띄었고.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된 인연은 지금까지도 그를 추억하게 한다.
 홍콩에, 마카오에 상륙하게 해달라는 다른 사람들의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는 일종의 별종 취급을 받았다. 애초의 약속은 인도에 닿을 때까지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지만 어째 사람의 마음은 그리도 간사한지. 하지만 이것도 지금이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때 당시엔 나 역시도 육지를 밟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뭐, 아주 절실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의 청을 거절한 그를 일정 정도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었고, 덕분에 그와 친해질 수 있었긴 하다.
 그러면서 나누었던 신변잡기를 여기에 일일이 기록할 필요는 없겠지. 아참, 특이한 것 몇 가지. 보통 부모님에 대해 말하면 어머니가 먼저 나오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듯했다. 북에 계신다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이었고. 그래서인가, 보통 ‘사랑’이라 말하면 연인과의 관계를 넘어서 가족애, 조국애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의 사랑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아마 조국애 같은 것을 입에 담았다면 나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으리라. 다만 그 당시에는 - 그리고 아마 지금도 - 보기 힘든 인간상이었다는 것만 얘기하고자 한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배 위에서의 생활, 그 무료한 시간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와 나는 꽤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과 북에서 모두 살아봤던 그의 경험으로 인해 그가 ‘광장’과 ‘밀실’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날에는 이야기 끝에 그가 덧붙이기도 했었다.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라고. 나 역시도 공감하며 말했다. 남한은 자유가 넘쳐서 문제가 되는 개방적 광장이며 북한은 자유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폐쇄적 밀실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조금 내저었다.
 오히려 그는 남한을 밀실이라고 표현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라고 한 그는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게다가 북한을 보며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그 어떤 모습과는 다르게 읽어야 하는 남과 북의 사회였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고도 말했던 그는 내게도 물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사뭇 절실해 보이는 눈이었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찾을 때까지 오래 고민하고 방황하는 건 우리 모두가 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이외에 나는 무엇이라고 더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도 굳이 대답을 기대했던 질문은 아니었던 듯 깍지를 끼고 내 옆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나는 그가 던진 화두를 붙잡고 씨름을 했더랬다. 다른 흥밋거리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이란 어떤 것인지, 그것을 찾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 역시도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해보자면 사실 그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이유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을 내 문제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지.
 떠나온 곳보다 닿을 곳이 더 가까워진 어느 날, 그는 자신의 과거와 함께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해방 이후의 남한 사회에 실망하고 월북했지만 북한 역시도 자기가 꿈꾸던 곳은 아니었다고. ‘무디게 울리는 소리. 광장에서 동상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 엎드려서 울고 싶었으나, 울기 위해서는 그는 네 개의 벽이 아직도 성한 그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니 그의 마음의 방이 아니다. 마음의 방은 벌써 무너진 지 오랬으므로. 그의 둥글게 안으로 굽힌 두 팔 넓이의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다.’라며 자신의 경험을 술회하는 그는 담담했다. ‘두 팔 넓이의 광장’이 무어냐고 묻자 어느 날 맞잡은 손을 보다 생각난,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메워질 둥근 공간이라고 했었지. 자신에게 남은 우상은 ‘부드러운 가슴과 젖은 입술을 가진 인간의 마지막 우상’이라며 그는 떠나온 곳도, 닿을 곳도 아닌 먼 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한 가지 고백을 했었다. 갈매기 두 마리. 출항할 무렵부터 보이던 그 새들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채 태어나지도 못한 딸이라고. 뱃사람한테 얘기를 들었지만 여태 알아보지 못하고 피하려 하고 총으로 쏘려고 했다며 꼭 무엇에 홀려 있었던 기분이라고. 지금의 자신이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걸 알고 뒤돌아보니 푸른 광장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성사를 하듯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이 취하게 될 행동을 예비했음이 틀림없다. 왜 그땐 그걸 몰랐을까. 하긴, 사실은 알았다고 해도 말릴 자신이 없었다. 남과 북 모두에서 환멸을 느낀 그에게 나는 무얼 바라고 살아보라 얘기할 수 있을지. 나는 싫기 때문에 떠난 것이지만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떠난 것 아닌가. 이제 보면 포로 송환 때 중립국을 선택하고 바깥에서 큰 소리로 웃었던 것은 그였으리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하지만 그 곳에 이르기 전에 그는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본 그는 천상 ‘궁리질 공부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을 찾아 떠났고, 현실과 부딪친 이상들은 산산이 깨어졌다. 그는 사랑에서 이를 위로받으려 했지만 그 역시도 쉽지 않았다. 20년 쯤 전엔 한 시인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얘기했었지. 그리고 시인은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며 시를 끝맺었더랬다. 더 이상 부드러운 가슴도 젖은 입술도 남지 않은 그는 빈집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결국 그는 기대 쉴 수 있는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간 것일 게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고 말하던 그를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말을 곱씹어 본다. 미친 맹신과 허망한 무신이라. 마치 지금 이 곳을 본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나. 하긴 밝은 눈을 가지고 늘 고민하고 움직이려 노력했던 그에게는 훤히 들여다보였을 테지. 한 치 앞도 파악하기 힘든 지금, 그래서 그가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광장>을 다시 꺼내 읽었다. 회색인이니 패배주의니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 이명준이 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것일까. 한동안 - 어쩌면 지금까지도 - 그에게 빠져 있던 나는 여기에 객관적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마 ‘그럴싸한 맺음말’ 같은 건 찾지 못한 채 ‘맺음? 맺음말이란 건 무얼 말하는 것일까? 누리와 삶에 대한 맺음말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만 잡히면 삶 같은 건 아주 시시해지는 그런 무엇일까. 아니 반드시 그럴 것까지는 없고, 또 그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라며 고민하는 모습에, 그리고 그 고민의 답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 결론이 어떻게 내려졌든 - 에 자신을 비춰보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뿐. 아마 두 명의 독고준을 만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조금 더 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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