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늙는다는 것은...어떤 것일까? 평온과 평화, 안도 이런 것보다 먼저 오는 '두려움'은 무엇때문일까?

'아주 오래된 농담'
첫장을 펼치니 흑백화면으로 주름 가득한 얼굴로 작가가 웃고 있다. 아뿔싸, 이 어른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칠순이 지났단다. 아하, 그렇구나.

내 자신 얼마나 편견과 아집의 굴레가 강건한지 새삼 깨닫는다.
'사랑했던 박완서 아줌마'라고 혼자 떠들었듯이 나는 이미 과거형으로 이 작가를 보내버리고 싶은가보다.
자꾸 트집을 잡으려한다.
같은 수식어가 다음 문장에 또 나온다...뒷부분을 읽다가, 이 양반이 저 앞에서 이런 얘기 비췄던 걸 잊었나? 틀림없이 수없이 다시 읽곤 했을텐데. 책 한권을 관통할 총기를 잃었나?...
그렇게 자꾸 트집을 잡으려 했다. 그래도 그 '끼'가 다 어디갈까?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풀어내는 이야기마다 자연스럽게 그 분 나이들어감과 같이 간다고 여겼다.
그런데 새삼 칠순이다라고 하니, 지금 이렇게 사십,삼십대의 풍경을 그려내는 게 어딘지 모르게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갖게 하려한다. 이런 게 다 내 심술이기 십상이다.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사십대를 배경으로 자연스러운(?) 불륜과, 이른 죽음, 그것들을 둘러싼 풍경들을 그려내는 이야기이다. 불륜이든 죽음이든 보여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빠져드는 것이 아닌, 쉼없이 견주고 가늠하며 헤아리는 주변인들의 습성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재주. 역시 그런 면에서 탁월한 작가다.

끝부분, '파리텍사스'의 주제곡이라며 우울과 절망을 이야기한다.
주제곡이 무엇인지 생각은 안나지만 거의 이십년도 더 전에 영화관에서 혼자 그 영화를 보다가 남들 다 맨숭맨숭한 와중에 나혼자만 펑펑 울어대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남들이 잡아내지 못한 그 황량함, 가슴 저미는 쓸쓸함에 젖을 수 있다는 데 자족하던 젊은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마흔이 넘어 되짚어내는, 그 불같던 스무살 시절의 쓸쓸함을, 이 양반은 언제 어떻게 느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엉뚱하긴.

'오래된 농담'은 '죽음'을 얘기하는 건가?
작가가 얘기하고싶었던 게 죽음이든 돈이든 과히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얘기다싶다
 항상 옆에 앉은 사람마냥 옆구리 꼬집어대는 내용들로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하는 작가의 재주에 탄복하면서도 정작, 작가 그 본인은 그런 것들을 모조리 '관조하는' 모습이기를 바라고 있었나보다.
작품으로는 가까이 하되, 사는 모습은 훨씬 투명하고 맑은 모습이길 기대하게 된다. 사진도 너무 씁쓸하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저 사진을 저렇게 찍어낸 사람은 무슨 의도였을까?

...잘 늙으시라...
여전히 사랑하는 박완서 아줌마.
부디 노쇠함이 부르는 편협함과 닫혀지는 사고의 틀을 이겨낼 수 있는 현명함과 총기를 항상 잃지 마시기를...

내 모든, 그에 대한 불만이,  언젠가...신문에서 이문열을 옹호하며, "나는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차이를 모르겠다"던, 그 인터뷰 내용에 기인한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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