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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누구인가
김진애 지음 / 한길사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진작에 읽은 이 책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짓고 사는 건 정말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보곤 하는 근사한 희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든 그런 날이 올까?
가난한 것이 부끄러울 것도 없고 부자인 것이 자랑일 것도 없을텐데 사람 사는 가치는 참 쉽게도 흔들립니다. 나는 또 어느만큼 부끄럽지 않은 줏대를 가지고 사는지, '우울한 속물근성'따위가 숨어있어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구석은 없는지, 소소하게 부딪는 모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소신을 갖고 사는지, 걸레질을 하며 열심히 생각해보게 하더군요.
어디든 공기좋은 곳에 내 안위를 위해 마음에 드는 집을 짓고 살아보는 것,
그렇게 될 날이 있을까마는, 그 또한 내 뿌리깊은 속물근성에 연유된 건 아닌가 부끄럽기도 하고, 다만 희망만으로 머릿속 그림이나 그려보곤 합니다.
'이 집은 누구인가'는 '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몇십년을 살아왔던 '집'에 대해 정해진 관념, 잣대,...이런 것들을 다시 되새기게 합니다.
'동선이 긴 집'.
동선이 긴 집이 좋은 집이랍니다.
꼭 맞는 얘기다라고만 할 수도 없겠지만,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운 이래로 내내 어떻게든 동선이 짧은 집만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게는.
신문에서 본 구절입니다.
'...요즘 아파트는 몸동작을 단순화시킵니다.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밖에 못하는 건데, 몸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더 다양한 동작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보면 이 눔의 아파트 때문에 잃어버린 동작들이 참 많네요.
숨바꼭질 하느라 기어들던 다락, 벽장이며, 온갖 잡다한 것들이 다 들어가 있던 마루밑으로 엎드려 기어들어가 무언가를 집어내오던 기억이며, 아궁이앞에 쪼그려 앉아 불장난 하던 기억이며, 김장독 묻을 땅을 파내는 어른 옆에서 거든다고 엉뚱한 삽질하던 기억이며, 오르락내리락, 어려서 살던 집에는 참 많은 잔동작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화하고 편리한 것만을 추구하는 서구적 생활양식을 무분별하게 달게 받아들이고 산다싶네요.
이 집은 누구인가, 목차만 보아도 책의 내용을 알 것같습니다.
발상의 전환, 고정관념을 깨는 것. 참 재미있습니다.
기존의 생각의 틀들을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는 게 얼마나
재미가 없는 노릇인지 다시한번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