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름은 산을 타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요. 산을 완전히 보려면 구름 아래에 있어서도 안 되고, 구름 속에 있어서도 안되고, 구름 위에 있어야 해요. - 구름해석전문가 중에서 "


우리는 인간관계라는 거미줄같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겨난 감정들을 결코 놓지 않을 듯 붙잡고 있다가도 언젠가는 놓아 주어야 하는 것을. 이제는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련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알고, 기억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부희령 작가의 소설은 접한 것은 단순 호기심 때문이다. 표지의 화려한 디자인 때문에 이끌렸고, 제목에 또 한 번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 내용 그 자체에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그녀의 초기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구름해석전문가>에 실려 있는 여섯 편의 단편들만 읽어보더라도 분명 나의 취향과 결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의 처음을 장식하는 <콘도르는 날아가고>는 70년 대를 배경으로 한 한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자신은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소녀의 맹세는 깨어지게 되면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사랑에게서 달아나려는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짝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었다. 표제인 <구름해설전문가>는 작가로서 동경하고 좋아하던 선우를 떠나 포카라로 떠난 이경은 선우를 잊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완전한 집> 역시 포카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금희 역시 잊기 위한 여행을 떠났지만 정작 그녀는 헤어진 사람의 흔적을 좇고 있었다. 일본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둔 <만주>에서는 주인공 임돈은 경성에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지만 병원 운영을 위해 빌리 사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친구 태련의 부탁을 받아 독립자금을 전달해 주는 일을 맡게 되고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귀가>에서는 과거에 폭력으로 시달리던 어두운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에서는 나름 상류층에서 살아가고 있는 네 명의 중년들은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념에서조차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는 내용이다.



​하루를 고스란히 써서 읽은 이 소설을 완독하고 느낀 점은 '자유를 원하는 갈망'이었다. 자신을 감싸고 억누르고 있던 어두운 기억, 거미줄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 옳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관념에 이르기까지 표제의 구름 해석 전문가 이미지처럼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구름 같은 삶을 원하는 인물들이 느껴졌다.


"아무튼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았어요.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선한 삶이 아니라 그저 삶을 불필요하게 짓누르는 무거움을 털어버리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은 헤매고 망설이며 좌절한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지만 길을 잃는 것 또한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걸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는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그 막막함과 같이 길을 찾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시간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