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행성의 기록
라오서 지음, 홍명교 옮김 / 돛과닻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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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와 거대한 인구,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대제국의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맹목적인 자만과 폐쇄적인 교역으로 대외적 개방을 거부하고 찬란했던 과거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으로 발달된 무기 기술을 앞세운 영국은 식민지 확장을 위해 아편과 대포를 앞세워 중국의 본토에 일격을 가했다. 이것이 아편전쟁이다.

"5백 년 전 그들은 곡식을 재배해 수확했기에 미혹 나무 잎이 무엇인지 몰랐다. 한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 묘인들의 나라로 가져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위가 높은 이들만 그것을 먹을 수 있었지만, 나중에 미혹 나무를 옮겨 오게 되면서 모두가 중독돼 버렸다. 채 50년도 되지 않아 그걸 먹지 않는 이들이 더 소수인 상황이 됐다. 미혹 나무 잎을 먹는 것은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할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걸 먹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지만 손발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사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일하는 것도 불가능해 모두가 한가롭다. 그래서 정부는 더는 미혹 나무 잎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 명령 첫날 정오, 황후는 금단 증상으로 괴로워하며 황제의 뺨을 세 대나 때렸고, 황제는 그저 울 뿐이었다. 이날 오후 다시 명령이 내려졌다. 미혹 나무 잎을 '국식'으로 정하겠노라고." p52

한 중국인이 친구들과 떠난 우주여행에서 어떤 행성에 불시착하게 되는데 이 행성에는 고양이 얼굴을 한 묘인들이 살고 있었다. 친구들은 죽고 주인공은 묘인들에게 잡혀 갇히게 되지만 탈출하게 되고 묘인들의 추적을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이용해 묘인들을 쫓아내지만 기절하고 만다. 눈을 떴을 때는 그를 옮겨온 '따시에'라는 묘인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는 미혹 나무라는 중독성 강한 나무를 관리하고 있었다.

눈치채겠지만 미혹 나무는 영국의 아편을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밀수를 막기 위해 금지령을 반포했지만 관료들마저 매수되어 밀수를 자행해 금지령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대륙 전역에 유통되며 은의 대량 유출로 중국의 경제까지 흔들게 되었던 것이다.

"묘인들은 외국인과 싸우더라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자립을 하고 힘을 키우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묘인들은 너무 교활해서 힘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외국인들이 서로 살육하길 신에게 간청하고, 약한 묘국이 강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나라가 묘국만큼 약해질 기회를 노리거나 말이다. 외국인들은 묘국 안에서 언제든 이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서로를 공격함으로써 묘국이 편익을 취하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강 대 강으로 붙으면 결국 분쟁이 일어나고, 싸워서 이겨도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다. 반대로, 그들이 연합해 묘인들을 능멸한다면 아무 손실 없이 큰 이점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의 정책만 이러한 게 아니라, 묘국 내에서 일하는 개개인도 이러한 조건을 지킨다. 미혹 나무숲을 보호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좋은 일자리다. 하지만 지주만을 위하면서 묘국에 저항하는 자만 책임지기로 다 같이 약속하고 있다. 쌍방 모두 외국인이 보호하는 상태라면 누구든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도 한 것이다. 이 조건을 지키지 않는 자를 보면 양측의 보호자들이 합의하여 지주나 우두머리를 징벌한다. 이렇게 하면 묘국의 일로 외국인끼리 다투는 걸 피할 수 있고, 보호자의 지위를 우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묘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p102

아편을 앞세운 영국의 침략은 중국 사회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자본주의의 생성으로 봉건사회의 해체를 촉진했지만, 봉건적 착취 제도는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매판자본은 고리대 자본과 결탁하여 사회경제적 지배적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충격은 봉건 중국을 결코 자본주의적 중국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하나의 반 봉건적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외세 침략은 소설 속의 외국인을 연상시키는데 이들에게 의존했던 관료들은 수동적이고 비굴한 묘인들의 태도와 닮아있다.

중국은 영국,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8개국 연합군에게 제국의 심장부인 수도 베이징을 짓밟히는 민족적 수모를 당하며 서서히 반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비록 중국은 대외관계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독립 국가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미 불평등조약에 의해 국가의 주권과 영토가 완전히 침탈되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중국 정부는 '양인 조정'으로 바뀌었다.

<고양이 행성의 기록>에서 외국인을 앞세워 이익을 취하려는 묘인들의 모습은 1930년 경의 무지하고 비열했던 중국인들의 모습을 지식인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소설 속의 화자는 곳곳에서 자신의 고향을 위대한 중국, 태평하고 즐거운 중국이라고 칭하는 이것은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것에만 급급한 관료와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암울했던 중국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며,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묘성의 묘인들의 모습은 당시 과거의 영광 뒤로 저물어 가던 중국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과 답답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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