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문실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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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그나마 무슨 날이라야 가는 부모님이 계신 집, 얼마 전부터 불현듯 부모님이 슬퍼 보이고 안쓰럽다. 또다시 5월이 오는 탓인가?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아픈 몸뚱이를 힘들어하며 넔두리하는 모습이 싫어 외면도 한다. "아프면 병원 가시지 왜 그러고 계세요." 파르르 성깔 부리며 앉으면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잘 지내지?" 어머니는 여전히 어머니 같은 말만 한다. 힘들다며 벌러덩 눕는 나는 여전히 철부지인 채로 말이다. 서른넷에 집을 떠난 자식은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를 늘 마흔 중턱 어느 봄쯤으로 기억하고 살았다. 당신의 아들이 세상에 나온 지 43년이 지난 오늘, 가슴 뜨겁게 당신의 자리가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이 아팠다. 당신과 조심스레 깊은 눈을 맞춘 후 돌아서는 발걸음이 자꾸 무거워진다.

"이토록 모순된 유기적 생명 공동체가 세상에 또 있을까?" - 톨스토이

창비에서 출간한 <끌어안는 소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며 생기는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정지아, 손보미, 황정은, 김유담, 윤성희, 김강, 김애란 작가의 가족을 테마로 한 단편소설은 잊고 있었던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기에 충분했다. 모든 작품을 감동 있게 읽었지만 그중 가슴에 와닿은 소설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최근 <나의 아름다운 날들>을 감동 깊게 읽었던 정지아 작가의 <말의 온도>는 노년을 바라보는 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며 어머니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그녀도 한때는 철없이 투정 부리는 딸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어머니의 삶은 가족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와 말을 하다 보면 이상한 대목에서 심장이 저렸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고 외할머니의 딸이던 시절에는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라 한때는 마음껏 투정을 부려도 되는 딸이기도 했던 것이다.

참여한 작가들 중 가장 최근에 소설집을 낸 손보미 작가의 <담요>는 죽은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장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장은 콘서트 장에서 사고로 아들을 읽고 죽은 아들의 담요를 끌어안고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야간 순찰 중 영하의 날씨에 놀이터에서 떨고 있던 어린 부부에게 아들이 담요를 건네며 끌어안고 있던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다.

"아들이 죽은 후, 장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번, 회식 자리에서 만취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들을 잃은 후, 장의 생활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담요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가 야간 순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장 독특한 이야기였던 황정은 작가의 <모자>는 가끔 모자가 되어버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유년 시절 당신의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은 아버지는 그때부터 모자가 되어버렸다. 중요한 순간이면 당황하며 얼어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안쓰러워하는 자식들의 시선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으로 보살핌 받았어야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세 남매의 할아버지는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폐암에 걸려 죽는 날까지도 꼿꼿하게 등을 펴고 누워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그 남편이 아직 젊었을 때, 하루는 밥상에 밥알을 너무 많이 흘렸다고 아들의 바지를 벗겨 놓고 엉덩이를 팡팡 때린 일이 있었다. 고작 다섯 알 정도를 흘렸고 주워 먹으면 그만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쓸데없이 꼬장꼬장한 남편을 상대로 말해 봤자 입만 아플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새벽에 목이 말라 일어났더니 자리끼로 놓아두었던 주전자가 비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주전자를 들고 마당으로 나간 그녀는 낮에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둘째 아들이 우물가에서 조그마한 모자가 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자였지만, 그녀는 모자가 그 아들인 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애란 작가의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역시 독특한 발상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인적이 드문 섬 플라이데이리코더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삼촌과 살고 있는 아이는 어느 날 노란색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걸 보게 된다. 잔해에서 찾아낸 블랙박스를 보며 엄마라고 한 삼촌의 말에 그것을 엄마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로부터 형성된 우주의 만물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보는 삼촌의 말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그게 서로 다른 종으로 태어날 경우 대화를 할 수 없게 돼 있어. 그래도 몸을 기울이면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방법은 우리가 발견해 내면 돼. 지금 엄마랑도."

소중한 것들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내일과 언제까지나 옆에 있어줄 것 같던 내 사람들도 세월의 흐름 앞에 그 무엇으로도 거스르지 못하고 늙어간다. 언젠가부터 아내와 딸이랑 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손을 잡는 버릇이 있다.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손바닥을 긁어보기도 하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문질러 보기도 한다. 가장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닮고 싶었을까. 아내와 딸도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가만히 맡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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