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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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인생 권고문이 마음에 와닿는다. 사소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에 관심과 눈길이 가고,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 행복해하고, 모든 평화로움에 감사하려는 것도 어쩌면 나이 탓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인간은 관계에 의해 얽히고설키어 살아가지만 본직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다. 인생은 홀러 태어나 마침을 향하여 가는 여정이다. 그런 외로운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 살아가는 의미와 존재 가치를 느낄지도 모른다. 사랑과 우정이야말로 한세상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붙잡고 가야 할 자산이다.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인간에게는 우정이 있다."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우정은 새에게 둥지만큼, 거미에게 거미줄만큼 인간의 삶을 지탱하도록 하는 터전이다. 이 터전을 가꾸기 위한 우정 또한 벗을 위한 배려와 헌신이다.

창비에서 출간한 <함께 걷는 소설>은 백수린, 이유리, 강석희, 김지연, 천선란, 김사과, 김혜진 작가의 우정을 테마로 한 단편소설로 다양한 모습의 우정을 그려 내고 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의 수록된 <고요한 사건>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친구들의 무리가 나뉘게 되고 부모마저 잘사는 동네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깝게 지내던 무호와 해지 역시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것 같던 친구였지만 그들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을 장식할 스치는 인연이었다.

"부모님은 새 학교로 등교하기 전에 몇 차례나 내게 이왕이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그런 당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한 번도 전학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임을 나는 이내 알게 되었다. 전학생에게는 친구를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부모님은 미처 알지 못했다. 전학생으로 처음 교탁 앞에 서는 순간, 내게 쏟아지던 여든 개의 눈동자. 가늠하고 평가하여 어느 부류로 분류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재빨리 나를 훑던 눈길은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이유리 작가의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된 <치즈 달과 비스코티>는 돌멩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학교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돌을 던지고, 열일곱에 처음 돌과 말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 돌멩이 '스콧'을 유일한 절친으로 삼고 있는 그는 상식적으로 정상인이라 생각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을 무척이나 좋아해 닉네임을 치즈 달을 보호하는 쿠커에서 따왔다는 쿠커는 나에게 다가온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광적인 관심을 보이는 나는 쿠커가 무척이나 불편해하지만 함께 한 여행에서 쿠커는 물에 빠지게 되고 그를 구하다 셔츠 주머니에 넣어둔 스콧을 잃어버려, 스콧을 찾기 위해 안절부절못해 하지만 주인공의 말을 믿고 있다며 스콧을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는 쿠커의 말로 그의 존재를 조금은 인정하게 된다. 인간과의 원만한 관계가 힘든 그들은 사물과의 관계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가볍게 읽어 나갔지만 학교 폭력과 주위의 무관심으로 상처받고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그린 소설이라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건 날카로운 돌멩이였다. 그놈은 네 바늘을 꿰맸고, 나는 고의로 머리를 가격한 게 아니라는 걸 선생님과 어머니 앞에서 설명해야 했다. 물론 돌이 그러라고 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드디어 내가 남자다워졌다며 너무나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저런 놈들이 괴롭히면 똑같이 해 주라고 했다.

그놈이 이마에 붕대를 감은 채로 학교에 돌아왔을 때 내가 죽도록 얻어맞았음을 말할 것도 없다. 그 사건 이후로 내 학교생활은 더욱 험난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날 새로운 취미가 생겼기에 견딜 수 있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돌멩이라는 돌멩이는 모두 주워 다 말을 걸었던 것이다. 저기요? 제 말이 들리나요? 제발 대답해 주세요. 저 들을 수 있어요. 제발."

김혜진 작가의 <축복을 비는 마음>은 일로 만나 나누게 된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입주 청소를 하고 있는 인선은 신입 경옥이 불편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그냥 감내하고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불만을 얘기하는 유별나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옥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참고 있었던, 힘껏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던 말들이었던 것이다. 부당한 일에 자신이 먼저 나서서 말하며, 자신을 격려해 주는 그녀는 오래된 관계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은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것은 경옥이 건넨 말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껏 들어 본 적 없고, 듣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은 자신이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한 번쯤 그런 말을 해 주길 몹시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다정한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 거였다."

우정이라는 테마로 백수린 작가를 비롯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집에서 수록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들의 모음집이라고 해야 할까? 놀라울 정도로 알차게 만들어져 있어, 위에 나열된 작가들의 소설을 막 읽기 시작한 사람이나 시간 여유가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좋은 단편모음집이니 기회가 되면 꼭 접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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