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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미술관 산책 - 빌딩 숲에 숨겨진 예술 아지트 ㅣ 미술관 산책 시리즈
박인선 지음 / 시공아트 / 2012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화쟁이 친구랑 의가 맞아 홍콩에 다녀온 게 엊그제 같건만 손을 꼽아보니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예술가 친구야 홍콩 느와르에 대한 고독한 끌림에 여행을 가자고 했던 것이고, 나는 아편전쟁의 상흔을 안고 영국에 조차(租借)되어 자유무역의 상징적 도시로 거듭난 그곳이 궁금했기에 흔쾌히 동행했던 터. 오전은 여행사의 짜인 일정에 의해 기본적 관광코스를 돌고 오후는 자유롭게 여행하는 4박5일짜리 반패키지를 떠났었다. 마카오 같이 가자는 패키지 팀의 권유를 마다하고 오롯이 홍콩에서만 걷고 타고, 걷고 커피마시고, 걷고 맥주마시고, 걷고 맛집가고, 걷고 인파에 휩쓸리고, 걷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친구야 중경삼림의 배경이 되었던 청킹맨션(Chungking mansion, 중경맨션 : 침사추이의 번화가 네이던 로드 Nathan Road 에 있는 주상복합 빌딩)과 그 거리가 기억에 남았겠지만, 난 맥주 한 잔과 홍콩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홍콩섬 센트럴지구의 헐리우드 로드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소호거리 옆에 있는 이 거리를 밤낮으로 두 번씩이나 찾아갔으니…….
갑자기 떠난 여행인지라 홍콩으로 출발하기 전에 관광가이드 이런 책을 미리 읽어볼 시간이 없었고, 그냥 공항에서 각자 구입한 간단한 책자(론리플래닛과 랜덤하우스 책)와 지도만 들고 돌아다녔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온 후에 홍콩을 제대로 구경이나 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왠지 다시 한 번 더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러 책을 찾아보았다. 기억나는 책으로 재작년에 읽은 <홍콩 배케이션>이 있다. '스타일리시한 여자들의 홍콩 즐겨찾기'란 부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홍콩이 '관광'보다 '소비'를 위한 도시라는 관점에서 써내려간 자본주의 물신의 내음이 폴폴거리는 소비 지향적 안내서였다. 세칭 '항공 티켓 값 빠진다.'는 홍콩의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포지셔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물욕적 관점과는 대척의 선에 있는 홍콩 관련 책이 번쩍! 눈에 들어왔다. 시공아트에서 발간한 <홍콩 미술관 산책>!!! '빌딩 숲에 숨겨진 예술 아지트'란 상투제목이 홍콩이란 작은 도시가 내포한 이미지와 얼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문화와 홍콩을 연결하는 건 어렵다. 특별나게 매스컴에서 홍콩의 예술 활동에 대하여 들은 적도 없었고, 명색 그림쟁이 친구와 갔는데도 크게 어필하는 예술작품을 소개받거나 보질 못했다. 물론 별로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 이유도 있지만, 홍콩이라는 도시 자체가 영국의 식민지 통치와 반환이라는 정치, 경제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는지라 '문화의 사막'이라 한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박인선님은 이런 복잡하면서도 묘하게 단순한 문화적 현실 속에서도 이곳이 '문화가 샘솟는 아주 독특한 오아시스'임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저자는 홍콩이공대학에서 디자인 석사과정을 졸업 후 '홍콩아트센터'에서 예술행정과 전시기획 업무를 배웠고, 현재는 홍콩의 ‘커뮤니티 아트 네트워크Community Art Network’에서 예술행정 업무를 맡고 있으며,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홍콩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술 분야의 전문가이니 만큼 보통의 관광 책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예술적 차원에서 홍콩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데, 만약 내가 홍콩여행을 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분명 코스 선택이 달라졌을 거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홍콩에서 예술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으나, 좁고 복잡한 미로 같은 이 곳 안에는 놀라운 보물이 숨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침사추이 하버시티 바로 옆에는 홍콩미술관이 있다는데, 우린 시간이 맞지 않아 밖에만 앉아있었던 미술관. 홍콩정부 산하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저렴한 입장료로 부담이 없다고 한다. 저자는 '1주일 박물관 패스(Museum Weekly Pass)'를 구입(HK$30, 한화로 약 4,500원)하면 7곳(홍콩미술관, 홍콩우주박물관, 홍콩문화박물관, 홍콩해안경비박물관, 홍콩역사박물관, 홍콩과학관, 순얏센 기념관) 어디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고 귀띔해준 뒤, 홍콩 예술의 크리에이티브 허브라 불린다는 홍콩아트센터, 대표적인 대안공간이라 할 수 있는 파라/사이트 아트 스페이스 등 미술 전시 공간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홍콩 속 예술 아지트'로 관심을 이끌어 들인다. 그런 다음 간간이 몇몇 홍콩의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포탄오픈스튜디오(1월), 홍콩아트워크(3월), 홍콩아트페어(5월) 등 홍콩에서 가 볼만한 예술 행사를 안내하고 있다. 이 정도까지면 그저 그런 책이겠지만, 오랫동안 홍콩 예술계에 몸담아 온 이 분야의 전문가답게 '홍콩 아트 산책 코스'를 추천하고 있는데 이게 매우 마음에 든다. 간단한 일 같지만 이런 코스 선정은 실제 다녀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일종의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홍콩여행시 찍은 홍콩 거리 및 일상)
제목은 미술관 탐방이었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담겨있는 책이다. 예술 분야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별 넷 정도의 평가를 받겠지만, 이쪽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저자의 꼼꼼함이 보이는 별 다섯의 책이다. 나에겐 당연 별 다섯의 책이란 느낌. 쇼핑 말고도 홍콩 여행에서 '아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의 풍미를 더하는 주제가 될터이다. 화쟁이 친구와 홍콩에서 찾은 자유의 의미가 어째 뒤바뀐 듯도 하지만 여행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친구에게 보여주면 분명 한 번 더 가자고 할 것이다. 꽉 짜여있는 휴가일정 속에 또 언제 바람의 결이 그쪽으로 향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은 그런 유혹의 단초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저 여행의 신이라는 헤르메스(Hermes)의 입김이 바람에 실려오길 기다려 본다. 헐리우드 거리 한 아트점 아가씨가 눈 앞에 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