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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삶과 우리 국보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평점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최순우 선생을 알았다. '하늘로 향해 두 귀를 사뿐히 들었지만 뽐냄이 없는 의젓한 추녀의 곡선',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이나 '연둣빛 무순 향기' 등 우리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특유의 감성적 문체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생은 '무량수전'을 일러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했던가. 그 이듬해 오대산 산행 길에 일부러 부석사를 찾아 그 기둥에 등을 대고 겹겹첩첩의 소백산을 바라보면서 그 아스라한 아름다움에 취하던 기억 속에 최순우 선생은 존재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인기 있었던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면서 우리 것에 대한 애착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풀어내는 그 해박함과 심미안에 진정한 고수의 경외로움을 느끼게 했던 최순우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가진 '한국미'를 본격적으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오주석, 이동주, 최완수, 안휘준, 윤용이, 황호근, 조선미 등등 이쪽 분야 전문가들의 저서를 두루 섭렵하게 되었으니 이건 모두 한 번도 뵌 적 없는 선생의 덕이다.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 이 분에 대한 전기가 나왔다고 하여 손에 잡아보았다.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꽃피운 최순우의 삶과 우리 국보 이야기>란 책인데, 전기가 이렇게 세련되고 고졸(古拙)스런 느낌으로 읽혀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지은이를 보니 <간송 전형필>의 전기를 쓴 그 이충렬씨다. 과연 명불허전. 수다스럽거나 들뜨지 않고 절제된 그의 글은 혜곡 선생이 평생을 바쳐 그리워 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참 잘 그려내고 있다. '혜곡 정신'을 찾기 위해 "우선, 그가 남긴 모든 글을 찾아 탐독했다. 1947년 9월 서울신문에 발표한 ‘개성 출토 청자파편’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쓴 문화재 해설 280편, 미술 관련 에세이 205편, 논문 41편, 사료해제 86편 등 모두 600여 편의 글을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자료조사를 했다(7쪽)"는 그의 말이 거짓 없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전기(傳記)가 이 정도면 혜곡 선생도 제법 수고했노라 빙그레 웃으실 것만 같다.
선생은 조선사학 미술의 개척자이자 문화유산 답사의 선구자인 고유섭의 제자로 정말 빼어난 문화사와 박물관사의 거목이었음을 발견한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혜곡 선생의 많은 업적 중에서도 두어 가지만 꼽자면 아무래도 먼저 한국의 미를 세계 속에 알린 공을 내세워야겠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 그리고 개발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먹고살기 바빴던 앞 세대 어른들이 문화재의 가치나 보존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때 우리 것을 아끼고 지키는 선각의 길을 걸어온 선생 같은 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문화가 있고 국보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는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우리 국보의 해외전시 업무를 주관하여 우리 문화의 높은 품격을 알렸으며, 특히 한국 미술의 역사를 5,000년으로 규정하여 일본과 미국에서 '한국 미술 5000년전'을 개최한 일은 참으로 빛나는 전시와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역시 고려청자 가마터를 강진에서 발굴한 일을 들어야겠다. 이후 알려진바 국보급 청자 80%이상이 강진산이라고 하니 가히 청자의 고향은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이라 하겠다. 그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청자의 파편마저 일본인들의 손에 들어갔을 걸 생각하니 그의 노고가 그저 우리의 복이라 생각한다.
선생의 일생이 우리 문화에 대한 지킴이였으며 한국미의 순례자였음을 많은 분들이 증언하고 있다. 유홍준 선생은 그의 <정직한 관객>에서 최순우 선생에 대해 "그는 한국미의 탐색자였으며 대변인이었다. 감성의 논리학이라는 미학적 사고를 전개하는 미학자가 아니라 미술품이라는 실물을 관찰하고, 음미하고, 분석하면서 숨겨진 미적 가치를 발굴해 내는 대안목의 소유자였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나 짧은 소견으로 이 이상의 표현을 말 해낼 방도가 없어 그냥 인용하고 만다.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고 지키며 한국미를 찾는 일에 매진한 선생의 열정에 그저 감복하고 존경할 따름이다.
전체적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운보 김기창 선생이 혜곡 선생의 고향 친구란 사실, 혜곡(兮谷)이란 아호와 순우(淳雨)란 필명을 간송 선생이 만들어 준 마음의 선물이라는 사실 등은 또 다른 읽을 꺼리였다. 어쨌거나 다음 간송미술관 개관할 때 서울에 들리면 선생의 옛집 '혜곡 최순우 박물관'에도 들려봐야겠다. 선생의 여운이 남아있는 그 곳에서 한 호흡 크게 하며 한국 미술의 마음씨 같은 그의 정신과 얼을 느껴봐야겠다. 혜곡 선생이 걸어온 여정을 잘 살려낸 참 잘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