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 개정판, 원문 영어 번역문 수록 현암사 동양고전
노자 지음, 오강남 풀어 엮음 / 현암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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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게 딱 3권의 책만 가지고 지구를 떠나라면? 분명 그 중 한권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일 것이다. 도덕경을 처음 손 잡은 것은 대학 3학년 때이다. 훗설과 하이데거로 이르는 실존철학을 넘어가면서 노장사상(老莊思想) 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기독교와 불교관련 서적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 하다보니 저절로 조금 많은 부분을 외우고 있으며, 지금도 가끔씩 들먹거리며 유식한 척 스스로 만족하니 읽긴 많이 읽은 모양이다.
노자가 언제 살았는지도 불분명(이 책엔 기원전 6세기)하고 이본(異本)이 하도 많아 어느 본이 진본인지 모르겠으나, 요즘 발간되는 도덕경은 상편 37장과 덕경이라는 하편 44장으로 구성된 총 81장으로 소개되어 나오고 있다. 한문으로 5,000자 정도 밖에 안되지만, 그 오의(奧義)가 심오하여 조금 박식하다는 분들의 해석이 각기 달라 참된 의미를 헷갈리기도 한다. 언젠가 도올선생이 전 국민을 상대로 노자강의를 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하였지만 일각에선 '노자를 웃긴 남자'로 폄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올선생의 지극히 일상적인 체험을 바탕으로한 해석이 나름 탁월하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에, 판단의 근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원전해석을 견강부회식 논리로 풀어나갔다는 비판 또한 근거없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도 대학 때 읽었을 때 책 옆에 달아 둔 나의 주석은 세월이 흘러 읽어보면 어린 소치가 여실히 보이고 부끄러워진다. 노자의 도덕경은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사상의 그릇 크기에 따라 이해의 깊이가 다르다는 거다. 자신의 자리매김이 빈약한 가운데 섣불리 입에 되기엔 노자가 던지는 지혜의 여백이 너무 넓어보인다.

노자의 사상은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노자가 살았던 당시 중국은 전쟁의 시대였다. 자고 일어나면 나라 하나가 없어지는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바로잡아 정착하기 위해 공자는 인륜도덕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방법을 택하였지만, 노자는 원래 순수했던 사람의 본바탕 마음을 먼저 회복시키는 것이 문제해결의 키포인트로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타락하게되는 원인은 자연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상대적인 욕망과 편협한 지식으로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기 때문이라 보았다. 이런 상태에서 윤리와 도덕을 덧입혀봐야 인간의 문제는 개선 될리가 없으므로 허망한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무궁한 흐름에 순응하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째 이 내용이 작금의 우리들의 교육문제와 오버랩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더불어 융화하는 삶의 길을 가르치지 않는데 학교에서 인의와 예법을 가르친들 헛일이라는... 학생의 인권 강화를 악용하는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로 인하여 교육 자체가 멍드는 이 현실이... 
 
서양의 철학적 사고가 보편적인 실재를 추구하면서 존재와 인식을 명확화하고, 자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피드백하면서 개선하는 것을 진보진취적 인간의 자세라고 보는데 비해, 노자는 현상과 인식의 불분명을 이해하고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어버리는 대립적 존재자들의 대립성이나 모순성이 우리의 인식과 무관하게 실재한다는 믿음은 우리들의 착각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또한 자연을 인간과 대립하는 도전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까지를 포함한 "스스로 그러함 (126쪽)"으로 보고 있다. _이 부분의 이해는 되지만 그냥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나 상태'로 파악하고 싶다._  무엇을 더 보탤 수도 손상시킬 수도 없는 완전한 존재이며 자존적 생명이 노자의 도(道)이며 자연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것에 내재한다는 이 완전한 자연을 이해할 때야 비로소 노자의 가르침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자사상의 기본인 도(道)란 무엇인가?
오강남 선생이 말하길, 첫장 도(道)만 잘 이해해도 도덕경 반 이상을 이해했다고 할만큼 어려운 요해를 내가 어찌 가벼이 입을 떼겠냐마는, 일반적 개념으로 파악해보면 노자의 도(道)는 유교의 규범적인 인도(人道)와는 달리 형태도 없고 이름도 없는(無形無名) 자연의 상도(常道)라고 보면 되겠다. 이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무는 어떠한 존재도 없다는 뜻의 절대무, 허무가 아니다. 이것은 차별적인 모습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無形(무형)이며, 한정적인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無名(무명)이라고 할 수 있는 무(無)다. _중국 초기불교의 이제론(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설명할 때도 무형무명으로 풀이한다_ 즉, 노자는 만물을 생성하게 작용하는 무형무물(無物)의 존재로 파악하여 천하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났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로서의 무의 작용은 어떠한 작위나 욕망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 자연의 도라는 의미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 하여 말해질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 했으니 도에 대하여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는 노자의 심려가 느껴진다. 오선생은 도(道)에 대해 "우주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도록 하는 무엇, 그리고 그것이 움직이도록 하는 기본 원리, 그것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존재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우주의 기본원칙 같은 것, 그런 의미에서 '궁극 실재'라 생각(21쪽)" 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얼른 알수는 없지만 도와 만물과의 연결과 그 인식방법을 가늠해 보면서 본격적인 읽기에 들어간다. (도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배움은 25장을 깊이 읽으면 도움이 된다)
 
노자도덕경의 전 사상을 이야기 하기엔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는지라 즐겨 인용하는 몇가지만 소개할려고 한다.
아이와 지인들에게 67장의 귀절을 자주 인용한다. 我有三寶,持而寶之。一曰慈,二曰儉,三曰不敢為天下先。내게  세가지 보물이 있어 지니고 소중히 하니, 첫째는 자애, 둘째는 검약, 셋째는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음이라... 자애 때문에 용감해지고, 검약 때문에 널리 베풀수 있고,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음때문에 큰 그릇들의 으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몇가지 고사를 곁들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공감해 한다.
다음으로 자주 인용하는 귀절은 33장(158쪽)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남을 아는 것이 지혜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이다. 남을 이김이 힘있음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 강함이다. 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富함이고, 강행하는 것이 뜻있음이다. 제자리를 잃지 않음이 영원이며, 죽으나 멸망하지 않는 것이 수壽를 누리는 것이다.
이 외에도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나 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綱恢恢,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광대하여 엉성한 것 같지만 놓치는일이 없다), 유덕화가 출연하여 유명한 천장지구(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참삶을 사는 것이다)등은 자주 인용하며 삶의 지표로 삼는다.
 
오강남 선생이 풀이한 이 책의 해석에 전부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상당히 어필할 수 있는 요인이 있는 책임을 인정한다. 우선 한글화가 되어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난 김항배님의 <노자철학의 연구(思社硏)>를 기본 텍스트로 삼고 씨알의 소리에서 함석헌선생님의 <도덕경> 해석을 즐겨보았지만 한자체가 많아 지금의 학생들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시대엔 보편적이지만 요즘 어디 그러한가. 도올의 책이나 이런 해석본이 더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양철학과 기독교적 입장에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지식편향적 사고에 젖어있는 신세대에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 하다. 그 밖에 도덕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같이 실은 점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한사람의 해석이 잘못된 인식을 낳을 수 있으므로 보다 지적인 해석을 원하는 분들은 김항배님 책이나 '감산의 노자풀이' 등을 참고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이본 중에서는 왕필본을 보통 최고로 꼽는다.)
 
도덕경의 마지막 81장을 보면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信言不美),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美言不信)"고 하였다. _진실한 말은 꾸밈이 없고 , 꾸며진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풀이가 더 부드럽게 더 다가온다_ 결론같은 이 귀절은 항상 가슴에 바람을 일으킨다. 진리의 말은 현란한 미사여구나 화려한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노자의 말씀은 새기고 새길수록 비움이 많은, 그래서 마음이 맑아진다. 피가 식어갈수록 노자의 가르침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번읽고 마는 그런 사상이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무게가 더하는 경외로운 책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에나 필독해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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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1-1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거의 5년 전에 다른 곳에 이미 올린 글인데... 지금 읽고 있는 도덕경 관련 책의 리뷰와 연결을 위해 아곳에 옮겼습니다....

cyrus 2016-01-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전문가들이 최고의 <노자, 도덕경> 번역본을 선정해도 그것만 사서 읽는 일은 위험한 것 같아요. 최고의 번역본도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더군요. 저는 한때 오강남 번역본이 믿을 만한 책이라고 믿었어요.

표맥(漂麥) 2016-01-20 18:03   좋아요 0 | URL
한자세대이니만큼... 번역과 함께 대충 그 느낌을 감지할 수 있지않나 싶습니다. 물론 자신의 그릇만큼 채울 수 있는거겠구요... 결론은 결국 자신에게 달린거라는... 뭐 그런 생각입니다...^^

yamoo 2016-01-2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강남의 <도덕경>은 전문가에게 최고로 많이 까이는 책이지요~ 저도 언젠가 페이퍼로 쓴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이 판본을 갖고 있지만, 읽다보면 신경질이 도져서 도저히 못 읽겠더라구요~ㅎ

표맥(漂麥) 2016-01-21 16:5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다른 도덕경 풀이에 비하면 좀 많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지요. 동양적 사상의 제대로 된 이해와 바탕이 부족하다... 뭐 그런...
이 책만 보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으니 기본적으론 동감이지만...
그래도 지금 나온 책 중에서는 가장 젊은 독자 지향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전 도덕경을 자기공감의 문제로 파악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이해도가 높은... 그게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
어쨌거나 아직도 공부가 진행형이니만큼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기엔 제가 좀 부족... 그러다보니 전 대부분 수용형입니다...^^